면담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기간이 있는데 이때는 고민이 없어도 면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소한 고민은 당연히 존재한다. 처음부터 고민이 있었던 사람은 이 기간이 보따리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고민이 많고 그래서 걱정이 늘어나는 것을 좋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걱정이 적당한 스트레스를 만들고 삶에 긴장감을 준다면 어떨까? 지나친 걱정으로 그것에 잠식되어 버리면 심각한 문제가 되겠지만, 그걸 잘 이용하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걱정 없이도 으쌰으쌰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의외로 정말 고민이 없는 친구들도 간혹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특히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변화된 모습이라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는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질책했지만 그런 것이 모두 자신에게 손해라는 것을 느끼고 지금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속으로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진심이 너무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누구나 알고는 있어도 실제로 잘 지키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걱정할 시간에 그 걱정을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걱정하지 않거나.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는 경우가 살다 보면 많다. 그런데 이걸 실천하려고, 아니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보니 공감을 넘어서 대견하고 안심이 되고 부끄럽고 부러웠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성인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생각이 많을 시기이기도 하다. 나도 그 시절에 가장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직장인이 되고 일에 치일 때는 다른 종류의 생각이 많을 때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던 것 같다. 그들도 충분히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배울 점도 많다는 뜻이다.
지금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개발하는 것이 즐겁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사람은 잘할 수밖에 없다. 이게 그 천재보다 무섭다는 노력하는 자보다 무섭다는 즐기는 자가 아닌가. 나도 즐기지 못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니 내가 뭐 더 해줄 말이 있겠는가. 즐거운데 무슨 고민이 있을까.
오히려 고민은 나에게 생긴다. 긍정적인 생각은 좋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한 없이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데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였나? 내가 너무 자만한 것인가? 나는 내 생각보다 못난 사람이 아닐까?'
물론 그 시점에도 긍정적으로 '조금만 지나면 또 좋은 날들이 올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낙관적인 미래만 꿈꾸다가 좌절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를 덮쳐오기도 한다.
이 걱정은 그들이 결과적으로 실패하여 좌절하게 될 것이라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할 작은 실패들에 크게 좌절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괜한 걱정일 수도 있다.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이 정도 역경은 훌훌 털고 일어나 버릴 만큼 충분히 강한 사람들일 것이니까.
그러니까, 나도 별로 걱정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