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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이라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브런치북을 마무리하는 말

by 송광용

언제부터 아이가 라부부 인형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내 눈엔 라부부 인형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약간 비호감에 가까워 보였다. 아이는 그 인형이 귀엽다고 했다. 뭐, 취향은 다양한 거니까. 어쨌든, 아이는 한 문구점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라부부 인형을 발견했고, 1만 5천 원이라는 거금의 용돈을 쏟아부어 그 인형을 샀다.

그 인형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거 짭 아니야?”
“그거 짭이야?”
“우와, 귀엽다.”

1, 2번 반응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실망하는 거 아닐까, 인형에 대한 애정이 확 식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짭’의 개념에 대해 무지한 것 같았다. 유명한 인형에 정품이 있고, 비슷해 보여도 정품의 가격은 몇 배나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아이는 짭이 아니냐고 묻는 말들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뒤에도 인형을 끼고 다니는 걸로 봐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난 어떤 이유 때문에 아이들의 반응에 차이가 생기는 걸까를 생각해 봤다. ‘짭이냐’는 말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다. 삐딱하게 분석하자면 이런 뉘앙스를 품고 있다. “네가 라부부 인형을 갖긴 했어도, 그렇게 즐거워할 일은 아닐걸? (네 얼굴에서 웃음을 지워주지.)” 삐딱함을 넘어서 사악하게 분석한 감이 없진 않지만, 배려가 없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이런 지적은 꽈배기 니트의 작은 보풀처럼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내 기준에선 꽤 중요한 문제다.

사실 우리 아이가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집에 와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적을 받았을 것이다.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것보다, 배려 없는 말, 무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들의 말버릇은 가정교육으로 다듬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을 세심하게 하는 버릇은 적절한 부모의 피드백에서 비롯된다. 매일 수십 명의 아이를 만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가정교육을 잘하자는 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를 돌아보기 위한 글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잔소리라도 듣지만, 어느 시점부터 난 내 사소한 말버릇이나 배려 없는 뉘앙스에 대한 지적을 누구에게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물론, 배우자라는 지나치게 충실한 지도교사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관찰자를 내 안에 가져야 한다. 달콤하고 기분 좋아지는 말을 해줄 역량은 못 갖더라도, 불쾌하고 무례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부 지침은 갖고 가야 한다.

말 습관도 그렇지만, ‘좋은 걸 해주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금언은 중년으로 무르익어가는 내 생활 전반에 필요하다.

오늘 저녁에, 난 아내에게 선언했다. “이제 과자를 먹지 않겠다.” 아내는, 갑자기? 하는 표정이었다. 그 선언의 배경은 이렇다. 저녁을 먹고, 빵을 하나 먹고, 거기다 치토스도 한 봉지 먹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포만감을 느꼈다. 냉장고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과자 금지에 대한 강한 의지가 솟구쳤던 것이다. 조만간 빵 섭취량도 줄이겠다고 선언할 것 같다. 내 안에서 한미 관세 협상보다 치열한 밀가루 섭취 협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걸 찾아 먹는 것보다 좋지 않은 걸 안 먹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가수 박진영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건강 식단 문제뿐일까. 책을 읽자는 다짐보다, 쇼츠를 보지 말자는 다짐이 훨씬 유용하다. 웃어주자는 다짐보다, 찡그리지 말자는 다짐이 더 필요하다. 좋은 길을 찾자는 다짐보다, 길을 잃었을 때 낙담하지 말자는 다짐이 지금 내 삶에 더 의미 있다.

가끔 내 안에서 이런 질문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너, 하는 거, 그거 있잖아, 짭 아니야?"
가정, 직장, 글 쓰는 일, 인간관계, 어느 것 하나 제대로인 것 같지 않고 어중간하다 느낄 때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귓가에 울린다. 짭 아니야?

나는 이렇게 대답해 본다. 최고가 되지 못해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성과가 없어도, 짭이 아닌 이유는 단 하나. 그 어중간한 일들에 내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하고, 기록을 세우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내가 살아낸 시간에는 애씀과 성취, 실수와 성장의 꼬리표가 달려 있다. 그 꼬리표가 내 브랜드다.

인형엔 짭이 있지만, 삶엔 짭이 없다. 어설프고 서툰 오늘이지만, 그것이 바로 정품 같은 내 하루다. 스스로 내뱉은 배려 없는 말에 속지 말자. 짭이란 말이 두렵지 않은 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내 삶을 내가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길을 잃으며 힘껏 살아내자고 되뇌며, 이 브런치북을 완결합니다. 초반엔 주 2회, 후반엔 주 1회씩 연재하며 느낀 건, 꾸준함은 쉽지 않지만 꾸준함 없이 되는 일은 없다는 점입니다. 연재 기간 동안 딱 한 번 펑크를 냈습니다.(대부분, 그랬었어? 하고 계시죠?) 쫓기며 쓰기 싫어서 나 자신에게 반항한 결과였습니다. 그다음 주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글을 냈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꾸준함과 뻔뻔함을 몇 스푼씩 넣고 조리한 결과물입니다.

다음 브런치북도 연재 기능을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 조만간 새 테마로 돌아오겠습니다. 계약된 장편동화 원고를 다듬어 9월 말까지 출판사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불세출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그거 마무리하고 새 브런치북을 구상해 보겠습니다. 그간 <길을 잃고 있습니다만> 에세이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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