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좌충우돌 아이들의 공정 감각

by 송광용

도덕 시간에 아이들과 ‘공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공정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 ‘평등’이다. 흔히들 평등과 공정 사이의 차이를 밝혀 공정의 의미를 드러내곤 한다.

‘평등’은 누구에게나 무조건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다. ‘공정’은 사람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해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키가 다른 세 사람에게 담 너머로 야구 경기를 볼 기회를 주는 그림이 있다. 평등은 발판을 하나씩 똑같이 주는 것이고, 공정은 키에 따라 발판의 개수를 달리 주어 모두가 경기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유명한 그림 덕분에 아이들은 어렴풋이 차이를 감지한 듯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공정은 정해진 답이 아니라, 사안마다 복잡한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평등, 공정, 그리고 현실을 나타낸 그림>


난 아이들에게, 학생 네 명에게 빵 다섯 개가 주어졌는데 이걸 어떻게 나눌지를 물어봤다. 똑같이 1과 1/4조각씩 나누면 평등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상황과 특성을 고려해 서로 토론하고 합의해 빵을 나눈다면, 그것은 공정에 가까워진다. 누군가는 평소 '먹는 양'을 기준으로 삼자고 하고, 누군가는 빵을 얻는 데 기여한 정도에 따라 나누자고 할 수도 있다. 토론과 합의 결과, 하나씩 나누고, 남은 하나를 기여도가 큰 사람에게 준다면, 이는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토론과 합의가 만들어낸 공정일 것이다.

공정의 핵심엔 ‘소통, 토론, 합의’가 놓여 있다. 그래서 매 시간 아이들과 토론을 한다. 지난주 주제는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할까?'였다. 반대가 훨씬 많았다. 아이들 대부분 자신을 부자에 이입했고, 가진 것을 남들보다 더 내는 걸 견디지 못했다.(넌 형이니까, 동생한테 좀 양보해 줘,라는 말을 못 견디는 것처럼.) 세금이 사회 전체를 위해 쓰인다는 설명을 해도, 몇몇 만이 의견을 유보할 뿐 여전히 많은 아이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은 세금을 똑같이 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주 토론에서는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주제는 돌아가신 부모가 남긴 빚을 네 형제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 각 형제의 경제적 상황을 제시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그 네 명 중 한 명이지만 누군지는 모른다는 조건에서 토론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거의 모든 그룹이 형제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빚을 차등적으로 분담했다. 지난주에 "세금은 누구나 똑같이 내야 한다”라고 했던 아이들마저 그렇게 했다.

한 주 사이 아이들의 가치관이 바뀐 걸까? 그렇진 않았다. 아이들의 판단은 자신을 누구 입장에 두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이번 주는 ‘누가 될지 모른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회적 지위를 잠시 잊을 때, 사람은 더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아이들의 생각은 토론 속에서 얽히고설키다가도 어느 순간 껍질을 벗고 나온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건너가 보는 순간, 아이들의 생각은 깨어진다.

역할 카드를 활용한 수업도 그랬다. 아이들에게 역할 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카드엔 부자도, 사회적 약자도 있었다. “나는 원하면 언제든 원하는 걸 살 수 있다”, “나는 바깥에 나가면 놀림을 걱정하지 않는다” 같은 질문에, 어떤 아이들은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반대로 거의 모든 질문에 반응하며 몇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아이들의 얼굴은 여유가 있었다. 그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깨달았다. 차별받는 요소들―장애, 성별, 출신 지역, 건강, 나이, 부의 정도―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에 사람들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아무 질문에도 답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서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들이 몇 걸음이라도 떼게 만들어주는 것이 공정이 아닐까라는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에서 누군가의 생각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그 순간을 보는 건, 꽤 흐뭇한 일이다.

때때로 능력주의만을 내세워 기득권을 정당화하려는 어른들을 보면, 교실로 데려와 역할 카드를 손에 쥐어주고 싶어진다. 아이들도 배우는데, 어른이라고 못 배울까.

공정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연속이다. 아이들이 매 시간 입장을 바꾸며 흔들리고 갈팡질팡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솔직한 배움의 모습이다. 공정이란 결국, 정해진 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타인의 자리에 나를 세워보는 상상력’을 키우는 과정이니까. 가끔은 나의 빈곤한 상상력에 낙담한다. 상상력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계속 품고 가고 싶다.



keyword
이전 26화봉인 해제되지 않은 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