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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Oct 03. 2023

잔소리를 하면 즐거운가요?

추석의 단상

추석이었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라는 인사를 나눕니다. 감사한 마음을 명절을 핑계삼아 표현해 보기도 하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선물로 건내기도 하지요. 명절을 기회로 반가운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눌 때 한쪽에선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무사히, 덜 불쾌하게 명절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하고요. 그 결과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잔소리 메뉴판입니다.


명절 잔소리 메뉴판
대학은 어디 갔니 10만원
애인은 있니        5만원
졸업은 언제하니  5만원
취업은 언제하니  10만원
결혼은 언제하니  15만원


어떻게 하면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해갈 수 있을까 고민한 재치있는 결과물을 보며 웃다가, 친척을 오랜만에 볼 때 반가운 마음보다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게 씁쓸했습니다.



이번 추석 저희 집은 조카가 감기에 걸린탓에 언니네가 오지 못하여 단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카가 아픈 와중에도 할머니네 가고 싶다고 조른다는 말에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네에 오고 싶다니 다행이다.
너네는 어렸을 때 참 가기 싫어했는데."

오랜만에 4대가 모이던 명절 때가 생각났습니다. 증조할머니부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형제들. 저희 가족과 작은 아빠의 가족들까지. 몇십 명이 모였어요.

밤엔 일렬로 조로록 누워 붙어잤죠. 할아버지들과 남자들은 안방에. 여자들과 아이들은 거실과 작은 방에서 잤죠. 거실은 웃풍이 불지만 안방은 따뜻해서 안방이 탐났어요. 제가 바득바득 따뜻하고 아늑한 안방에서 자겠다고 우기던 바람에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싸우기도 했지요. 자리가 있었는데 안방에 딸을 재울 수 없다는 이유였죠. 그게 뭐라고. 하하.


저희  할아버지댁은 정말 시골이라 할 것이 없어 지루하기 그지 없었어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는 슈퍼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댁에 가기 전엔 꼭 과자를 몇봉지 사갔어요. 그렇지만 간식으로 심심함을 달래기에 명절은 너무 길었어요. 명절 특집이라는 티비는 재미가 없고, 밖에는 할게 없었죠. 사촌들은 들과 산을 헤매며 놀거리를 찾았어요. 그럼에도 그곳에선 하루가 꼭 일주일 같이 천천히 흘렀죠.


그러나 가장 싫은 건 어른들의 정치 이야기, 마을 사람들에 관한 소문과 험담. 그리고 나를 향해 오던 질문들이었어요.


"이번엔 몇등했니? 니 사촌 동생은 몇등했다는데."

친척들은 사촌들을 서로 비교하며 줄을 세우곤 했습니다. 우린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어른들의 질문 때문에 묘한 정적이 흐릅니다. 우리가... 경쟁 관계였나봐...!


친척의 결혼을 앞두었던 명절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저녁을 먹고 온가족이 둘러 앉았습니다. 브리핑을 시작했죠. 새언니의 나이, 출신, 대학, 직업 그리고 가정 환경 같은 것들이요.

어른들은 말을 보탭니다. 뭐가 어떻다 저떻다.

끔찍했어요. 축하가 아닌 평가가 우선한다는 것이요. 그리고 그 사람의 조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이 그를 가족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는 것이요. 하!


두 사람이 성격이 잘 맞는지, 새언니가 잘 웃는지, 마음이 너그러운지, 성실한지.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지 같은 건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그저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는 게 화가나 방에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화가 난 마음을 저희집에 찾아온 고양이 사진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는 거 별거 없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그러면서도 묻습니다.

대학은 어디갔니. 학점은 몇점이니

취직은 어디로 했니

결혼은 언제할거니. 배우자의 직업은 뭐니. 집은 어디에 구할거니. 몇평이니.


나는 나의 기준으로 살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다가도 친척 어른들의 질문과 시선을 상상하면 마음이 조금 쪼그라듭니다. 그것보다 못 참겠는건 그런 질문 앞에서 움츠러드는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힘이 빠질때면 종종 떠올립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 어깨를 굽게 하는 자식이 되진 말아야지. 부모님에게 저의 행복을 납득시킬 용기가 없어 남들이 선망하는 것들을 획득하려고 아둥바둥 노력합니다.

그러다가도 불쑥 울컥 화가납니다. 남들이 하는 때에 사회적으로 좋다 여겨지는 직장을, 많은 돈을 가져야만 행복할까요. 행복이란 게 그런 거였던가요.


나는 지금 건강하고, 행복한데. 아무도 나의 안녕은 묻지 않습니다. 요즘 무엇이 즐겁냐고 묻지 않습니다. 물어주면 좋겠습니다.


이쯤이면 궁금해집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것도 못 묻냐"며 쏟아붓는 수많은 질문은 누구를 위한 건가요? 나는 상상만으로도 괴로운데. 질문을 하는 당신은 즐겁나요? "이게 다 걱정이 되어서 하는 소리지"라고 한다면 되묻고 싶습니다. 


"정말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지 궁금한가요?"

명절은 길잖아요.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때요? 나를 걱정한다며 몇십분 동안 말을 쏟아낼 것이라면 그 시간에 우리 대화를 해보면 어때요? 정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답하면 어떨까요.

정말 궁금하지 않고, 걱정하는 나를 정당화하거나 걱정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의 나의 위치를 즐기는 것이라면 차라리 조용히 등을 두드려주세요. 입이 근질거려 못참겠다면 "화이팅" 한마디 정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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