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해볼까?
날이 추워졌다. 날이 좋을 때는 살랑살랑 걷기도 좋았다. 가보지 않은 공원까지 30분을 걸어서 가고, 또 30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를 크게 돌면서 골목을 구경하기도 했다. 볼 일이 있을 땐 일부러 둘러서 목적지까지 걸으며 하루의 걷기를 채웠다.
흔히 하던 만보 걷기 인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직장의 폐업 이후 어쩌다가 집에서 온라인으로 하는 활동이 많아지고, 강의 준비를 위해서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파서 서서 줌 강의를 해야 했고, 목이 너무 아파서 ppt를 만드는 일이 더디게만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어차피 혼자 걷고 있던지라 친한 대표님의 온라인 카페에서 '하루 10분 걷기' 챌린지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다. 혼자서 몇 개월을 걸었고, 챌린지로 5개월을 걸었다.
걷는 것도 탄력이 붙는다. 처음에는 공원의 작은 트랙을 두 바퀴만 돌아도 다리가 무거웠다. 다음에는 세 바퀴를 돌았고, 나중에는 야구장을 끼고 크게 돌았다. 돌다가 조금 뛰어도 보았다. 뛰다 보니 발목이 간헐적으로 삐끗하는 느낌이 들었고, 다시 걸으니 발바닥이 아팠다. 그렇다고 걷기를 쉬면 하루종일 앉아있는 내 골반에게 못할 짓이었다.
필라테스라는 운동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문화센터 등지에서 여러 번 수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전문 필라테스 센터에 등록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한 달에 3만 원씩 계비를 모았다. 목적은 해외 여행이었다. 항상 내가 총무를 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통장에 딱 3백만 원이 찍혔다.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며칠 후, 친구 A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아직 애도 어리고(엥? 제일 어린 막내가 초 5인데?) 우리끼리 놀러 가는 게 맘에 걸리기도 하고, 우리가 각자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고.... 그래서 말인데, 지금 모인 거 어차피 금방 못 쓸 테니까 한 번 나누는 게 어떨까?
워낙 돈이 아쉬웠던 시기라서 다른 친구에게 의견을 묻고는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백 만원씩 손에 넣었다. 그리고 몇 주 후, 친구들을 만났다.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A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중에 거짓말을 못하는 A는 사실대로 털었다.
-사실 이번에 가족 해외여행 갈 때 계비 받은 거 다 썼잖아.
좀 서운했다. 그럼 그렇지. 해외에 가장 자주 나가는 친구였다. 아이가 어려서 두고 갈 수 없다는 것은 핑계라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여행 자금으로 모은 돈을 그렇게 쓰려고 나누자고 했던게 좀 그랬다. 다른 친구 B는 그 돈을 진즉에 다 썼다고 했다. B도 직장을 옮기면서 해외를 몇 번이나 다녀왔다.
아, 그렇게 썼단 말이지??
어떻게 쓰면 이 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소소하게 물건을 사는데 쓰기보다는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그때 필라테스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들은 남편은 카드 혜택도 있는데 현금으로 결제했다며 기겁을 했지만, 나는 그때 그 돈을 써야만 했다. 무조건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