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의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식당에서 일하세요?"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환자 입장으로 간 낯선 병원에서 처음 보는 의사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고 할까? 내가 식당 아줌마로 보여? 물리치료사라고 할까? 이거 기분 나쁜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물리치료사예요."
"손을 너무 많이 썼네요."
"운동치료를 많이 해서 그래요."
"지금 이쪽 말고도 거의 다 증상이 약간씩 보여요. 초기는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거네요.
아직 수술하거나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손을 덜 써야 합니다."
의사는 처음 내 손을 보고 촉진을 하자마자 '어휴~ 손을 왜 이렇게 많이 썼어요. 무슨 일 하세요? 혹시 식당에서 일하세요?'라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만큼 내 손이 엄청 혹사당했다는 이야기겠다.
'운동치료'라는 걸 모르고 졸업을 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남자 선배들이나 운동치료에 관심이 있지, 여자 동기생 중에서는 운동치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졸업 후 임상에 나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물론 신졸은 전기치료 등의 쉬운 업무에 배정되기도 하지만, 간단한 운동치료 처방은 종종 나오는 분위기였다.
일을 하면서 주말마다 학회에 다녔다. OMT, PNF, Sling, KEMA, MFR 등의 스킬을 배우고, 평일에도 일을 마치고 스터디를 했다. 주말에 새로운 걸 배우고 나면 주중에 호의적인 환자분과 연습도 했다. 요령이 없었기에 내 어깨도 아파오고 손목도 시큰거렸다. 함께 일하는 선배들도 다 그런지라 물리치료사의 숙명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부턴가가 내겐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손목 물혹 등의 증상이 생겼고,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손이 부어 주먹을 쥐지 못하는 일도 자주 생겼다. 같은 치료사들끼리는 '환자가 환자를 치료한다'는 슬픈 우스갯소리가 구전처럼 떠돌기도 한다.
다른 치료에 비해 '운동치료'는 굉장히 보람되고 뿌듯한 일이다. 환자의 몸이 나아가는 걸 같이 느끼고, 어떻게 하면 환자의 기능이나 통증을 줄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공부하는 일이다. 호전되는 환자가 고맙다고 말을 할 때, 정말 수고 많다며 간식거리를 들고 오실 때, '내 낫게 해 준다고 고생이 많다'라고 말해줄 때. '내가 힘들어도 이 맛에 물리치료사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병원마다 돈벌이용으로 '도수치료'가 전락한 느낌도 드는 건 사실이다. 치료실의 여건이나 치료사의 수는 증원하지 않은 채, 무조건 환자만 밀어 넣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에 따른 인텐시브를 치료사에게 지급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내가 신졸 때보다는 좋아진 건 확실하지만, 아직도 치료사들의 노동현장은 열악하다.
이제 내 동기들 중에서는 이 일을 하지 않는 수가 반 이상이다. 다른 업으로 전환했거나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너무 힘들어서' 또는 '몸이 아파서'라는 이유도 많다. 주 6일의 근무 여건도 일을 지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동네 의원에서 운동치료를 하지 않으며 '아직' 일하고 있는 내게도 직업병은 하나씩 찾아온다.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20대, 내 일을 하고 싶었던 초보 워킹맘이었던 30대의 아픔은 40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 손에서 나타난다.
'방아쇠 수지(trigger finger) 증후군'을 진단받은 날, 또 하나의 훈장이 생겼구나 싶었다. 알고 있지만 인식하고 싶지 않았던 손바닥의 통증은 처방받은 파스 겔을 들고 약국을 나오는 그날 확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