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업의 줄을 잡고

물리치료사로 밥벌이하며 하고 싶은 걸 찾고 있는 워킹맘으로

by 달빛처럼

97년도의 IMF 금융위기는 3년 후의 입시에, 내 평생에 위기가 되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너나 할 것없이 교대, 사범대와 국립지방대 등 안전하고 저렴한 곳으로 지원했다.

성적이 중간정도 하는 친구들은 졸업 후 취업을 바로 할 수 있는 간호대, 보건대나 유아교육과 등으로 몰렸다.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다. 졸업하고 뭐 먹고 살 수 있냐는 엄마의 질문에 며칠 고민했다. 방향을 특수교육과로 틀었다. 그 땐 특수교육과의 점수가 그렇게 높은줄도 몰랐다. 다 떨어지고 차선책으로 물리치료과에 들어가게 됐다. 간호사는 피를 보니까 무섭고, 물리치료사는 어른들의 말씀에 '설렁설렁'하게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물리치료사가 되면 특수교육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있다고 했다. 겸사겸사 나는 '물리치료과'에 다니게 됐다.


고3의 연속이었다. 매주 시험이었다. 영어도 아닌 의학용어를 새로 외워야했고, 우리 몸에 뼈와 근육은 어찌나 많은지. 재수하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됐다.


처음 입사했던 병원은 교수추천이었다. 타지역의 노인병원이었는데, 병원에서 제공한 기숙사는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오래된 주택이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 겨울에 변기 물이 얼어있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녹여서 써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인 나와 친구가 모든 일을 맡아해야했고, 중풍환자를 치료해야했다.

시간제 근무를 하는 아줌마 실장님(실장님이라 부르지 마라고 했다)은 어서 딴 데 알아보라고, 우리같은 신졸들이 오면 안되는 곳이라고 했다.


두번째 병원은 여러 곳에서 소개가 들어왔다. 알고보니 같은 병원이었다. 환자가 너무 많았다. 물리치료사 4명에 보조도 2명이나 되었다. 근골격계 환자가 많은 정형외과였다. 그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입원환자, 외래환자, 산재, 공상, 자보, 보험, 보호 등등. VIP환자부터 동네 부랑자까지.

젊은 날을 쏟았고, 근골격계 환자가 되었다. 인간관계를 배웠고, 결혼을 하고 곧 그만두었다.


세번째 병원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일을 해야했다. '워킹맘'이라 이름이 내게도 붙었다. 역시나 정형외과였고, 실장급으로 입사했다. 입사하고 보니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알던 지역이 아니라 정보없이 들어간게 문제였다. 오랫동안 일하던 실력있는 남자 실장을 내쫓은 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여자는 돈을 남자보다 적게 주어도 되니, 저렴한 돈으로 경력직을 구했던 것이다. 마음이 힘들었지만, 다른 직원들과 합이 좋았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게 되고, 어느 순간 원장은 다시 '남자실장'을 원한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이 곳에서 일하면서 몸도 마음도 상했다.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받았다. 나에 대해 고민했다. 20살부터 병원에서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살아왔는데, 병원이 나를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3년간 이것저것 해보았다. 배우기도 하고, 다른 업종 맛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갔다. 책을 두 권 내고 네 번째 병원에 입사했다.


세 번째 병원에는 아직도 잘 지내는 후배가 일한다. 그 후배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지만, 잘 견뎌내고 있다. 그 병원 건물에는 다른 내과, 치과가 있는데 가끔 치료받으러 가면 동종업계라는 의미로 서로 잘 대해준다. 거기서 알고 지내던 내과 직원이 후배에게 연락해왔단다. '그 때 같이 일하던 여자실장님 어디서 일하냐고. 근처에 괜찮은 자리가 있는데 이야기해주면 안되냐고.'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의외였고, 기분이 좋았다. 집 근처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간이 좋았다. 일반 개인병원에서 주6일이 기본인데, 그곳은 주5일이라는 큰 장점이 있었다. 면접을 보고 다른 면접자들을 제치고 일하게 됐다.




'병원, 물리치료사'라는 이름을 듣고 산지 이제 20년이 되는 해다. 20살때부터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공부했고, 살았다. 각자의 사연으로 이 업계를 떠난 친구들도 많지만, 아직도 절반 이상은 '물리치료사'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박봉이어서, 몸이 상해서, 알아주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돌아오게 된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언제든 다른 부품으로 교체될 수 있는걸 알면서도 이 업의 줄을 잡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다르다. 직업으로서의 '물리치료사'는 그것뿐이다. 나는 그 일 위에 하나씩 나만의 것을 쌓으면 되는 일이다. 오직 그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각에서 벗어나니 이것만큼 좋은 일이 또 없더라. 물리치료사의 일은 고정수입을 주는 좋은 일이 되었다. 퇴근 후에 일감이 주어지지도, 야근이나 주말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일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좋은 일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닫고 이 업을 아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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