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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Mar 06. 2019

#8. 한계를 만나다

남혜윤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3인칭 주인공 시점>은 1시간의 1:1 인터뷰 진행 후 짧은 소설을 써드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소설은 인터뷰이의 동의를 받아 익명화되어 배포합니다. 배포된 소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한계를 만나다





“혜윤 씨, 이송 요청 들어왔어요. 지난번에도 갔던 청담동 폐암 환자예요.”

“아, 그 할아버지요? 네, 알겠습니다.” 

혜윤은 운전사와 함께 이송을 요청한 환자 김영규의 집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인자한 인상의 할머니가 인사를 건넨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혜윤은 운전사와 함께 실수하지 않게 조심하며 김영규를 이송용 침대에 눕히고 이송용 차로 옮긴다. 폐암 환자인 김영규는 기관지를 절개해 관을 꽂고 있다. 이송하면서 가래가 끼면 제거해 주고,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잘 유지하면서 병원으로 옮기는 게 응급구조사인 혜윤의 업무이다. 

“아가씨, 또 보네"

“네,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나야 뭐. 병원 가는 일만 아니면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신문 보는 게 일이지 뭐.” 

“그러시군요…”

공통 관심사가 없는 나이 많은 환자들과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이 정도에서 대화가 끊기는데, 오늘은 왠지 친절한 구조사가 되고 싶은 날이다. 그래서 대화를 좀 더 이어 나가본다.

“텔레비전에서는 주로 뭘 보세요?”

“뉴스를 주로 봐. 내가 예전에 기자였거든.”

“우와, 기자셨어요? 멋지세요. 어떤 기사를 주로 쓰셨어요?”

“나는 사회부 기자였어. 경찰서도 많이 들락날락 거리고, 사회에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을 고발하는 게 내 일이었지.”

“오, 멋진 일을 하셨네요.”

“뭐, 열심히 했지… 아무튼 기자 일을 하다 보니 여전히 호기심도 많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야. 어디 보자… 아가씨처럼 이렇게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직업을 뭐라 그러나?”

“응급구조사라고 해요.”

“응급실 간호사랑은 어떻게 다른 거지?”

“간호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고요. 응급구조사는 이렇게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하고, 사고 현장에 출동해서 당장 필요한 응급 처치를 해요. 치료와 처치는 좀 다르거든요. 흔히들 ‘골든타임'이라는 말도 쓰는데, 사고가 난 후에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하느냐의 여부가 환자의 생사나 수술 후 장애 발생 등에 영향을 줘요.”

“그렇지. 응급 상황에서는 1분이 뭔가, 1초도 허투루 쓰면 안 되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네. 80년대에는 병원에서 응급 환자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어. 의료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도 않고 병원 입장에서는 돈이 되는 영역도 아니니까.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을 때는 응급의료체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어. 그러면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건가?”

“그건… 아니에요. 초등학생 때는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사명감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생 때 엄마랑 싸운 날이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일단 119에 전화하고 무기력하게 기다리는데 정말 답답했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구급대원이나 소방대원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해서 이 일을 하고 있네요.”

“그렇구먼. 어릴 때부터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실제로 일해보니까 할 만은 하고?”

“음… 사실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르바이트같이 하고는 있는데요. 솔직히 좀 무서운 것도 많아요. 학교 다니면서 실습할 때는 제가 실수하거나 모르는 게 있을 때 물어볼 선생님이 같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진짜로 일을 하게 되니까 혼자 하다가 잘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겠네... 실수하는 게 무섭구나. 뭐, 크게 실수해본 적이 있었어?”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어쩌면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제대로 된 실수나 실패를 안 해봤다는 게요. 그리고 이 일은 실수했을 때 파장이 크잖아요. 저 때문에 사람이 잘못될 수도 있는 일이고요…” 

“그럴 수 있겠네. 그래도 계속해보다 보면 나아지지 않나?”

“네… 학교 다닐 때도 선배들이나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해주시긴 했어요. 경험이 두려움을 아예 없애주지는 않지만, 많이 커버해주기는 한다고. 실제로 해보니까 그렇기는 해요.”

“잘하고 있네. 그럼 계속할 것 같아?”

“사실… 이쪽으로 일할 거면, 의사가 되고 싶기도 해요. 고등학생 때도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막상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제대로 공부해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나도 처음부터 기자가 된 건 아니야. 공대가 취업이 잘된다 그래서 전기 관련해서 배우고 회사도 처음에는 그쪽으로 갔었어… 그런데 해보니까 너무 안 맞더라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하다 보니까 사람 만나고, 글 쓰는 게 재밌고 해서 기자가 되려고 준비를 한 거야. 근데 이쪽도 언론고시라고 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서… 3년을 넘게 준비한 것 같아.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지만, 나중에 보니 남들보다 오래 하고 있더라고. 지금 아직 20대지? 의사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후회는 남기지 않을 만큼 공부해 보라고.”

“네. 한 번 그렇게 해볼려고요.”

“그래… 그나저나 애인은 있나?”

“흠… 아직 애인은 아닌데, 요즘 말로 썸타는 친구는 한 명 있어요. 최근에는 공연장에서 의료요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든요. 거기서 알게 된 친구에요.” 

“그렇구먼. 요즘 젊은이들은 애인이 되기 전에 썸이라는 걸 타는구먼. 잘 되길 바랄게, 아가씨" 

“감사해요, 할아버지. 어, 이제 병원에 다 와가네요.”

“그래?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는구먼.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

“네, 다음에 또 뵈어요"

즐거운 이송이었다고 혜윤은 생각했다. 2주일 뒤에 있던 회식에서 다른 응급구조사에게 김영규 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목이 메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번은 더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시간은 생각만큼 무한하지 않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의료 부스에 앉아 멍 때리고 있던 혜윤의 얼굴 앞에 손을 저으면서 진운이 물어본다. 

“어… 어? 진운이구나. 안녕"

“네, 전 안녕한데요. 누나 뭔가 이상해 보여요.”

“아, 나름 정들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어제 들었거든.”

“아 진짜요? 슬펐겠다…”

“응. 좀 울었어.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아… 물어볼 게 있었는데, 오늘은 아닌 것 같아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때는 꼭 알려줘야 해요!”

“으응?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푸드 부스에서 일하는 진운은 최근에 혜윤의 의료 부스에 찾아와 상비약을 주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날은 히터가 고장 난 추운 날이었는데, 진운은 아프다면서 의료 부스 바닥에 누웠다. 추운 바닥에서 자다가 더 아프게 될까 봐 걱정된 혜윤은 담요를 챙겨주었다. 의료요원으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진운은 이틀 뒤 찾아와서 핫팩을 건네면서 감사 인사를 하고 갔다. 의료 부스를 다녀간 사람 중에 가면서 고맙다고 한 사람은 있어도 굳이 다시 찾아와서 고맙다고 한 사람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 뒤로 오며 가며 인사를 하고, 진운은 자신의 부스에서 파는 커피를 혜윤에게 한 잔씩 챙겨주기도 했다. 



“누나, 오늘은 꼭 물어보려고 왔어요.”

“응, 물어봐.”

“꼭 알려줄 거죠? 약속 먼저 해줘요.”

“응? 흠… 몸무게 빼고는?”

“하하, 흠…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응?????”

혜윤은 순간 당황했다. 24년 인생 중 처음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버버 하다가 번호를 찍어줬다. 뭔가 두근거리긴 했지만, 번호 주는 걸 곧 사귀자는 말로 이해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린 라이트이긴 했나 보다. 진운은 번호를 받아간 뒤 이틀에 한 번 꼴로 연락을 하고, 밥 한 번 먹자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시기는 연말이었고, 혜윤은 이미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이 많이 잡혀있었다. 미안해하면서 약속을 거절한 게 세 번쯤 되고 나니 진운은 더 이상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 혜윤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닌데도, 괜히 미안해졌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네가 제대로 깠네”

“그게 그렇게 되나? 난 정말 약속이 많아서 안 된다고 한 건데…” 

“너 완전 철벽녀처럼 보였을 걸?”

“아…”

“너도 관심은 있는 거야?”

“응? 글쎄… 그런 것 같아.”

“그럼 혜윤아, 지금 연락해. 당장 만나자고 해”

“지금? 지금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야 뭐 어때. 성인남녀에게 밤 10시가 뭐 그렇게 늦은 시간이라고. 때로는 영화처럼 살자, 친구야"

고민하던 혜윤은 진운에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 집이면 떡볶이나 같이 먹자고 보냈다. 진운은 칼답을 보내며 바로 달려왔다. 알고 보니 친구들이랑 만나는 중이었는데도 혜윤에게 온 것이었다. 그날부터 둘은 본격적으로 썸 타는 사이가 되었고, 2주 뒤 진운이 고백해 사귀기 시작했다. 



“누나, 나는 십자인대가 파열되어서 군대는 면제받았어.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어떻게 보면 2년이 생긴 거지? 그 기간 동안 나는 에티오피아에서 봉사를 해보려고 해. 어릴 때부터 내가 후원하던 아이가 있는데, 걔가 에티오피아 애거든. 실제로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가보려고.”

“아 정말? 언제 가는데?”

“두 달 뒤에. 가면 1년 정도 있을 거야.”

“아… 그렇구나.”

“사실 그래서 누나한테 고백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 그런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용기 낸 거야.”

“잘했어. 걱정 마. 네가 에티오피아에 있는 1년 동안 나는 열심히 공부할 거야.”

“의대 준비해 본다고 했지?”

“응. 사실 잘 안될 가능성이 더 많을지도 몰라. 그래도… 열심히 하고 나면 후회는 안 남겠지. 내 한계를 알아보고 싶어.” 

“응, 응원할게. 나는 누나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딸, 지금 일하는 이송대는 정규직 전환되는 거라고 했지?”

“아니, 엄마. 지원은 해볼 수 있는데 나 안 할 거야.”

“왜?”

“나… 수능 공부 다시 해보려고. 의대 목표로”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혜윤아. 너 벌써 20대 중반이야. 다른 애들은 열심히 취업해서 직장에서 자리 잡아가는 시기야. 이미 멀쩡히 대학도 나왔는데 돈 벌 생각은 안 하는 거니? 아빠 화물차 운전하시면서 건강 안 좋아지셨어. 엄마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거 지치고. 이제는 네가 주는 용돈도 좀 받아보면서 살고 싶어.”

“... 알았어. 엄마 생각은 잘 알았어…”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고,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씩 눈물이 흘렀다. 엄마 말이 맞았다. 사실 구구절절 맞아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엄청 잘했던 것도 아니고, 꾸준히 의사가 되기만을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사실 혜윤 스스로도 자신이 정말 절박하게 의사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려운 형편의 집안이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 혜윤이 하고 싶은 것에 따로 터치 안 하고 힘든 형편에서도 배우고 싶다는 건 열심히 지원해주던 부모님이었다. 그런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은 지금이라도 병원이나 전문 이송대에 취직해서 용돈을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월급을 받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혜윤은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지금의 삶은 혜윤이 살 수 있는 최선의 삶이 아니었다. 항상 설렁설렁 살았다. 잔머리 굴리고, 꾀부리면서 머리만 믿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살면서 한 번은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다시 응급구조사의 길로 돌아오더라도 한 번은 부딪혀보고 싶었다. 

혜윤은 다이어리를 꺼냈다. 모바일 뱅킹 앱을 통해 현재 계좌에 남아있는 잔액을 확인했다. 올해 수능일까지 남은 시간을 적고, 대충 필요한 돈도 적어보았다.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모님을 설득해 보고, 안되면 아르바이트를 겸하면서 공부를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019년 다이어리 맨 첫 장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나의 한계를 만날 것]



<끝> 




- 인터뷰일 : 2019년 1월 19일 

- 인터뷰이의 소설 만족도 : 3.5/5점

- 소설을 본 인터뷰이의 소감 :

아무래도 제3자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뷰할 때의 오고 갔던 이야기들만 쓰여져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려울 줄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사람이라서 더 하기가 쉽네요. 가까운 내 사람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들 공감, 재미 그런거 없었을텐데, 끝까지 들어주시고 게다가 이렇게 작품으로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김명선

- 수원에서 인터뷰서점 '리지블루스' 운영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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