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직장인의 풍속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by myungworry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을 읽다. '21세기 직장인의 풍속소설'이라 할 수 있을 듯. 많은 풍속소설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이 책의 인물들도 세상의 흐름에 순응한다. 본성이나 개성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해도 저항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시스템의 틈새를 찾아 소극적으로 뻗대 볼 뿐이다. 물론 그러한 뻗댐은 오래 가지 않는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의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동네 중고거래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안나는 앱에 너무 많은 물건을 올리는 유저 '거북이알'을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는다. 미국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동경하지만, 사실 사고방식이 자유롭지는 않은 사장은 거북이알이 영 못마땅하다. 안나가 만나본 거북이알은 어느 카드 회사의 직원이었다. 일 잘하던 그는 사장의 심기를 살짝 건드렸다가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는 징계를 당한다. 거북이알은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언론에 제보하거나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는 대신, 포인트로 물건을 사서 그걸 중고거래로 판다. 개인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 근무시간의 짬과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테크닉을 발휘한다. 인간관계와 축의금과 함께 먹은 밥값, 커피값을 정확히 계산하는 '잘 살겠습니다'의 화자도 비슷한 유형의 인간이다.


작가는 세태를 시니컬하게 바라보지만, 간혹 따스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은 세상 이치 잘 모르고 간혹 '민폐' 끼치는 동기 언니의 결혼 생활에 끝내는 축복을 보낸다. '탐페레 공항'의 주인공은 오랜 시간 간직했지만 현실적 조건에 포기한 꿈을 떠올린 날, 6년 전 핀란드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은 엽편 소설 정도의 길이로 오랜 구직 기간 끝에 첫 정규직을 얻은 신입사원을 응원한다.


쉽게 읽히고 인상에 남는다. 단편집은 다 읽고 난 뒤 그 내용이 가물가물한 작품들이 종종 있지만, 이 책에 실린 것들은 제목만 보고도 내용이 다시 선명하게 그려진다. 정이현은 이 책을 두고 "오늘의 한국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이라고 표현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허포포스트는 "판교 노동자들 울린 테크노밸리의 하이퍼 리얼리스트"라고 표현했다. 리얼리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리얼리즘이라 한다면 난 그런 리얼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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