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산층 청년에게 생긴 일

이창래의 '타국에서의 일 년'

by myungworry

이창래의 장편 '타국에서의 일 년'을 읽다. 처음 읽은 이창래 소설이다. 이창래의 소설을 따라 읽어온 이들의 평을 들으니, 전작들과 꽤 다르다고 한다. 전작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젊은 주인공(20대 초반)이 나오고, 해피 엔딩에 가까운 결말을 맺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반 50쪽 정도를 읽었을 때 이 작가의 명성이 높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도박 사이트의 노벨문학상 수상 베팅 명단에서 이창래의 이름을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유려하고 화려하고 밀도 높은 문장들이 이어진다. 때로 관념적인데 서사 역시 빼곡하다. 무엇보다 현대인의 삶의 한 양상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틸러의 삶은 어느 순간 지나치게 극적이어서 실제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믿기는 어렵겠지만, '타국에서의 일 년'을 읽다 보면 틸러는 현실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조금 생긴다.

틸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졌다. 왠지 모를 삶에 대한 공허감을 느낀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틸러는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꾸릴 여유가 되면서 성격도 온화한 아버지와 둘이 살아간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어서, 50년 전에도 100년 후에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중산층의 소도시가 이 부자의 삶의 터전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주인공이었다면 이 도시에서 평생을 살다가 어느날 자살하겠지만, 틸러는 중국계 미국인 화학자이자 사업가 퐁과 우연한 인연을 맺은 뒤 그를 따라 하와이, 마카오, 선전으로 1년간의 기막힌 여정을 떠난다. 이 여정은 심술 궃지만 솜씨 좋은 북유럽 영화감독이 아시아의 어두운 세계와 사람들을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떠올릴법한 형태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알 수 없는 극단적 성적 모험이 있고, 노예에 가까운 노동이 있고, 불로장생이라는 터무니 없는 욕망도 있다. 칸영화제에서 상영된다면 관객 10명쯤은 중간에 나갈 법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틸러는 어찌어찌 미국으로 돌아오고, 그 과정에서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이행중인 연상의 여성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을 만나 유사 가족을 이룬다. 틸러가 과거에 경험한 이국 생활 이야기와 현재의 새 가족 이야기가 교차된다. 두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로 묶이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마치 같은 이름의 인물이 등장하는 두 가지 장편을 엮은 듯한 느낌도 든다. (실제 책이 700쪽에 가까우니, 두 편으로 나눠도 장편 분량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안온한 중산층의 삶에 막연한 공허를 느끼던 틸러는 1년간의 극단적인 체험 후 공허를 이겨내거나 어른으로 성장했는가. 그것 역시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토록 심오한 체험을 하지 않아도 공허를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다. '미국 중산층'이자 대체로 백인이지만 사실 아시아계 혈통이 1/8 섞인 틸러에게는 공허이 깊이가 더욱 깊었다고 봐야할까. 시니컬하게 말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 속에 다른 고민을 안고 산다. 다른 이의 고민을 가볍거나 피상적이라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틸러 같은 미국 중산층 청년에겐 그런 삶과 생각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드러내줄 이창래 같은 작가가 있을 뿐이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꿈꾸던 삶은 틸러의 그 안온한 중산층 삶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국 청년들의 삶을 이창래처럼 드러내줄 작가도 한국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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