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시작은 이랬다.
임신이란다. 내 나이 40. 내가 살아온 날이 40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아이가 찾아왔다.
나는 나이 40에 임신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주변엔 아이를 간절히 원하며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게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정말 천운처럼.
물론 30대 때 TV의 한 드라마를 보며 나도 아이를 낳아 홀로 키워볼까? 잠깐 생각한 적은 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내 삶의 일부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삶에 아이와 함께하는 길이 생긴 것이다.
남편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떠오른다.
나와 남편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나는 첫인상을 좋게 보지 않았던 남편과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다.
사실, 남편을 처음 본 것은 일을 함께하기 전이었다.
지나가다 아는 분과 남편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에 ‘왜 저분과 걸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는 ‘40살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의였다.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반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쳐 잠시 남편을 봤을 때, 키는 177cm 정도로 큰 덩치에 어깨는 조폭처럼 딱 벌어져 있었다. 체구보다 얼굴의 이미지가 뭔지 세상의 불만이 가득해 보였고, 입은 굳게 다물어 웃음기가 없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인상을 유심히 보게 된 것은 함께 걷는 분이 어울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딱딱하고 여유롭지 않은 그 어떠함이 있었다.
처음 남편을 보았을 때 남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랬다.
잘 알지 못하는 이를 섣부른 편견으로 오판하는 실수를 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오해와 편견이었다.
그래도 남편에게 지금도 말한다. '인상을 펴, 그리고 입가엔 웃음을 지어'라고.
나만 남편을 그렇게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잘 모르는 이들은 나처럼 오해했다. 현재 남편의 인상은 많이 좋아졌다.
암튼, 이렇게 생각한 그와 현재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남편과 나는 협업을 해야 했다. 나는 상사에게 ‘저분과는 직접 협의하며 일을 진행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남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메신저로 물었다. 일이기에 그렇게 하라고 답했고 남편은 나를 찾아왔다.
‘차장님~~~’하며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딱딱하고 투박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가진 그의 목소리 얇고 간드러졌다.
나는 속으로 ‘헉~’하며 놀랬고, 우선은 ‘네’라고 답하고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는 단지 일만 했고, 남편에 관해서는 다른 동료에게 들었다.
당시 나는 ‘연애라도 해볼까?.’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남편과 함께 운동한다며, 남편이 착하고 좋다고 말했다. 그 후, 동료와 남편과 나는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본 첫인상과 달리 사람이 좋았다. 나는 내가 본 첫인상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자신은 어디선가 검문을 하는 일이 생기면 꼭 확인을 당하는 인상이라고 했다. 그만큼 남편의 인상은 남들이 보아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보이는 겉의 인상과 달리 남편은 자상했고 어떤 면에서는 여자인 나보다 더 감성적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일을 하며 알아가다 프로젝트가 끝났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나는 남편에게 ‘술 한잔하실래요?’라며 단 둘이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물었다. ‘저랑 사귀어 보실래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라고.
남편은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마음이 그렇긴 해요. 저도 결혼은 꼭 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를 가지려면 어린 사람을 만나야겠네.’라고 생각하며 ‘그러시군요.’라고 답했다.
나는 그때 ‘나와 사귈 생각이 없다’라는 답변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남편은 연락을 해왔고,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서로 10년 이상 각자의 삶을 살아온 우리는 만날 때마다 조율이 필요했다.
시간을 내야 했고, 관심사를 맞춰야 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맞춰가던 중에 아이가 찾아왔다.
나는 이 나이에 아이가 온 것에 놀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찾아온 사실에 감사하지만 생각하지 않은 삶의 길이다.
남편에게 사실을 말하니 남편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기 위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온 축복에 감사하며 함께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을 잡고 태교에 신경 썼다. 태명은 ‘축복’이라 지으며, 나이 든 커플은 마냥 행복해했다. 남편과 나는 나이 차이가 1살 정도다.
결혼을 준비하던 중, 남편의 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결혼식은 안 하기로 했다.
나이가 40대인 나는 배 속의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부했다. 태교에 신경 썼다.
남편은 뱃속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함께 병원에 다녔다.
임신 중 당뇨가 왔고, 먹는 것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야 했다.
임신 6개월에 양수 검사를 할지 병원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혹시 모르는 아이의 이상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요.’
우리는 고민하다가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배 속의 아이를 믿고, 혹 문제가 있으면 그 역시 받아들이자’라고 마음먹었다.
나는 출산 2달 전까지 일했다. 일을 그만두고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를 배우며 2달을 보냈다.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병원은 더 자주 가게 되었다.
병원 선생님께서 ‘아이가 거꾸로 있다’라며 스트레칭을 권유하셨다.
다행히 아이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임신 당뇨로 매일 운동을 해야 했는데, 남편은 저녁마다 함께 운동해 주었다.
아이를 맞이할 준비로 들뜨고 벅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예정일보다 일주일이 지났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유도분만을 권하셨다.
유도분만을 하루 했다. 아이는 여전히 나올 생각을 안 했다.
하루를 더 유도분만을 진행하던 중 오후에 선생님은 급히 오셔서 ‘수술을 해야 할 거 같다. 아이의 호흡이 불안정하다’라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수술 동의를 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의식이 있는 상태로 수술을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큰일 날 뻔했네요. 탯줄이 이미 떨어졌어요. 아이가 산소 부족으로 얼굴빛이 안 좋았어요.’라고 하셨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이는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나와 함께 10달을 채우고 있던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었다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우리 곁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내게 보여주시면서 ‘아이고, 아빠랑 똑같네.’라고 하셨다.
나는 마취가 풀리면서 몸이 붓고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아이를 보고 나는 회복실로 이동했다.
남편은 내 얼굴이 부어 있는 것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옆에서 울고 있었다. ‘고생했어’라고 하면서….
이렇게 우리는 가족 구성원을 이루었다.
아빠, 엄마, 아이. 이렇게 구성된 우리는 가족이 되기 위한 첫발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