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10년쯤 전에 아주 친했던 친구 한명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렇다.
'ㅇㅇ아,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인 것 같아.'
당시 난 친구가 말한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철이 없던 나에게 친구가 말한 그 사랑은 단순히 남녀간의 연애감정, 수많은 종류의 사랑 중에서도 가장 떠올리기 쉬운 그런 사랑이었다. 최근 몇년간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사건들이 심심치않게 일어났고 내가 아는 가장 최근의 사건은 故 이선균의 일이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아시아 국가의 내 친구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놀람과 슬픔을 표했고 멀리는 프랑스의 언론까지 앞다투어 그 일을 보도했다.
이상하게도 난 그의 가족이나 친구보다 걱정? 생각을 했던 건, 아이유였다. 아이유는 물론 친가족은 아니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이었고 문제는 이전부터 몇 사람이나 이미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유, 이지은이란 사람을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한다. 또 연예인은 영상에서 접하는 그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뒤는 그저 사람들이 희망하는 모습일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주변에 원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자기 선택으로 떠난 사람이 많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이긴다는 노래를 그렇게 아름답게 부를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얼마나 단단하고 강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해준다. 또 이 노래를 만들면서, 아니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또 극복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이 노랠 부르는 아이유는 금방이라도 숨이 다 끝나버릴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작은 몸에서 내는 소리는 단단하고 강하다. 게다가 수많은 팬들이 360도에서 아이유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모습은, 아이유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일들이 앞으로도 일어나겠지만.
친구가 사랑에 대해 얘기한 지 10년. 이제야 아주 조금 철든 나는 요즘에서 다시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2년전 이혼이란 걸 하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증오할 수도 있구나, 화가 이렇게까지도 날 수 있는 거구나, 내 입에서 큰 소리도 나오는구나 생각하게 됐다.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이혼을 결정할 순 없기에, 이혼으로까지 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 사람과 있는 내 모습이 참 싫었다. 그 사람과 있으면서 서서히 변해갔던 내 모습이 좋지 않았는데, 처음에 내가 안좋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원인을 잘 알지 못해서 나만 잘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그 사람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내 안에만 머물러 있던 화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그러면서 이혼을 결정하게 됐다.
그 때는 머리로는 쌍방이라고 말하면서도,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는 상대방 탓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느냐고 물으면 난 부처가 아니라서 상대방 잘못이 아니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받아들인 점은 그 사람과 나는 그냥 정말 안맞았던 두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풀어지지 않을 것들을 애써 붙들고 묵히고 있었으니 잘 흘러갔을리가 만무했던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나도 지금 나대로 잘 살고 있으니, 그 사람도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겠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내 증오로 불타버린 결혼생활로부터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얘기하고 싶냐면, 만인을 사랑하라는 그런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위선이 아니다. 그렇게 화로 가득차 있다보니 적어도 그게 나한테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차 있을 때는 오히려 그 생각만 하게 되고, 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왜 나는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지만 생각하게 되는데 이 생각에는 별 발전이 없고 다람쥐가 챗바퀴를 돌 듯 한 자리에서 그냥 발전없이 빙글빙글 돌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챗바퀴'같은 모양으로 도는 것이라기보다, 땅을 향해 도는 회오리 같아서 발전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닌 점점 땅을 뚫고 들어가 지구의 멘틀까지 닿을 기세로, 그러다 나까지 다 태워버릴 것 같은 곳으로 한없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조금 차가운 흙? 아니면 좀더 아래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곳 정도의 깊다면 깊을 수도, 아니면 아닐 수도 있는 곳에서 멈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지하수에 흠뻑 젖고나니, 어느 정도 정신도 차렸고, 이혼 절차도 빨리 끝났고, 좋은 집을 만났고, 이직까지 해서 살던 곳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2년. 그 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탄 자리에 새싹이 조금씩 머리를 내미는 것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 후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도 더 많이 생겼고, 왠만한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도 예전보단 조금 더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사랑..
아마도 난 증오보단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아직은 시작 수준이라 잘 모르겠지만. 봄이 올 때 힘겹게 피어나는 초록초록한 잎부터, 유독 쌀쌀한 봄에 포기하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 아이면 아이답게 시끌벅적하고 솟아나는 에너지로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사랑스럽게 봐주니 내 마음에도 조금씩 행복이 피어오른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나니 더 관대해질 수도 있고 타인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마음에 정반대되는 혐오감이 아직 없어지진 않았지만 이렇게 한 단계씩 시작하는 것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렵고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것을 극복하고도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그래서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