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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Oct 21. 2023

다시 가을

길이인

그대를 보내고 난 후 세 번째 가을을 맞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가끔 그대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심장은 뛰지 않고 눈시울도 붉어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밥 먹고 숨 쉬는 것은 힘들었지요.

흰 종이를 마주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문이었지요.


술을 마시고 미친개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생을 물어뜯었지요.

상처 입은 영혼은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요?


언젠가 그대는 단풍 든 가을 산을 병이 깊은 것이라 하셨지요.

병을 병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바꿔버린 대승적인 자세를 그대는 미리 알고 계셨던가요?


이제 마지막 풍경의 아름다움을 향하여 가을 산은 불타오르고 그 불꽃 꺼지고 나면 적막이 동굴처럼 입을 벌리겠지요.

그곳으로 걸어가서 긴 겨울잠을 자겠습니다.


익명으로 보내는 수취인 없는 이 편지는 어느 손에 가 닿을지...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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