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이의 갬성
멍이가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뒷모습을 보이면 왠지 쓸쓸해 보인다.
점잖은 멍이는 개답지 않게 집안에서 참으로 조용히 지낸다.
사료도 한 번에 많이 먹지 않고 조금씩 여러 차례 나누어 몇 알씩만 먹고, 좋아하는 간식을 주면 바로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리를 잡고 엎드려 편안자세를 취한 후에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중학생 쌍둥이 오빠들은 늘 고기를 원하니, 식탁에는 자주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의 유혹은 점잖은 멍이도 어쩔 수 없게 만들어 식탁 앞 의자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만한 엄마를 애절하고 그윽한 눈빛으로 고기 한 점 줄 때까지 쳐다본다. 마음 약한 뚱마는 결국 한 점, 두 점씩 뺏기고 만다.
머리 좋은 멍이는 그럴 거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안 주면 줄 때까지 쳐다본다.
시간 싸움은 멍이가 제일 잘하는 특기이다. 참으로 인내심이 강한 녀석이다. 상대가 미안해서 안 주고 못 배기게 하는 기다림의 달인 멍이다.
그렇게 태어난 지 6년밖에 안 되는 녀석에게 오십 줄의 뚱마는 매번 지고 있다.
그림자처럼 늘 가족 곁에 있는 멍이가 안 보이면 대부분 창가에서 밖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부르지 않으면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고 밖을 쳐다보고 있다.
어느 날은 자다가 깨어보니, 어둠 속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 멍이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여름밤 더위에 열어둔 창문 밖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 깨어난 건지, 아니면 밖이 보고 싶어 일부러 잠을 깨웠는지 알 순 없지만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런 멍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사색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마치 묵상에 잠긴 스님 같았다.
개를 집안에서 키운다는 것에 처음에 무척 반대를 하셨던 쌍둥이의 외할머니가 멍이를 막내손녀처럼 이뻐하시게 된 것도 웬만한 사람보다 멍이가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냥 이뻐만 하시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이번 생을 안쓰러워하시면서 자주 이런 말을 하셨다.
" 요년아, 니가 요물이다 요물이야. 우째 이리 깔끔을 떠노.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니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거라. 시집가서 니가 좋아하는 새끼도 낳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살아라."
눈이 깊고 조용한 멍이는 다 알아듣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조용히 듣고 있다.
쌍둥이 손자들이 보고 싶어 시골에서 올라오셨지만, 중학생인 손자들은 학교에 학원에 바빴고, 할머니는 미스터 트롯을 손자보다 더 많이 보시게 되었다. 다행히 그 곁에는 멍이가 있었고, 말동무가 되었다.
" 요년아, 이제 커피 한잔 탈 때 되지 않았나? 니 엄마 몰래 그만큼 얻어 먹었으면 이제 한 잔 타와 봐라."
믹스커피 한잔에 텁텁한 입안을 달래시면서, 몰래 멍이도 조금씩 먹였나 보다. 둘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에는 둘만의 비밀이 있어 보였다.
달달한 커피가 멍이에게 좋을 리 없지만, 멍이가 얻어먹은 달달함에 행복해하니, 할머니가 계시는 동안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말들은 쏟아내면서 적적함을 달래려는 할머니의 수다를 멍이가 책임지고 들어주고 있으니, 그 정도 단물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참 고마운 반려견이다.
어느덧 6살이 되어,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멍이는 하필이면 세 마리의 치와와 중 제일 성깔 고약한 탱이를 자기 새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탱이를 안고 발톱을 깎고 있으면, 이상한 울음소리로 애원하면서 탱이를 내놓으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발톱이 깎여 성질이 나 있는 탱이를 내려놓으면, 멍이는 정성스럽게 탱이의 얼굴을 핥아대려 하고, 탱이는 빡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면서 쌀알보다 작은 하찮은 이빨로 멍이를 위협한다.
그래도 멍이는 지새끼를 대하듯 탱이를 핥아대며 괜찮은지 확인한다.
새끼도 낳아보지 못한 멍이가 모성애 깊은 행동을 하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멍이라면, 다음 생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날 것 같다.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