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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5. 2020

삼각김밥과 육개장(수정)

20191206 작성글의 수정본입니다

뜨뜻한 컵라면 한 사발이 간절했다.


배곯지 않은 허기가 냄새를 맡았을 때는 그것을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대충 비슷한 것으로 때우거나, 더 좋은 것으로 달래 보려고 해도 그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아마 그 냄새가 추억에서 나는 냄새였기 때문일 것이다.


'육개장'은 내 생에 첫 컵라면이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야유회를 갔던 어느 날 그와 아련한 첫 만남을 기억한다. 옆에서 나들이 온 어른들이 설익은 육개장의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익숙한 듯 육개장의 뚜껑을 뜯어내어 두 번 접은 고깔 모양을 만들었고, 그 안에 가득 면을 담아 호로록 삼켰다. 그 모습이 하도 부러워 육개장을 꼭꼭 새겨 넣은 어린 마음이 목 끝에서 뜨겁게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학교에서 미술준비물로 컵라면 사발을 가져 오라했다. 가슴에는 비눗방울이 몽글하게 부풀고 집으로 뛰어가는 두 다리는 바람이 된 것처럼 가벼웠다.
엄마는 마지못해 육개장 하나를 사다 주었다. 급한 마음에 후다닥 포장을 뜯고, 분말 스프를 탈탈 털은 후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창인 봄이 발을 동동 굴러도 느긋하게 봉오리를 터뜨리는 황매화처럼 시간은 더디 흘렀다. 결국 다 익기도 전에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입 삼켰다. 얇은 면이 과자같이 툭툭 부서지면서 입 안에 흩어질 때 고소한 향을 따라 매콤 짭짜름한 맛이 혀를 감쌌다. 육개장 뚜껑을 툭 떼어 내어 고깔을 만들었다. 한 입에 홀랑 삼킬 수 있을 만큼 라면을 덜었다. 애타는 마음에 후후 불지도 않고 면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아마도 사람들은 뜨거운 면발을 식힐 요량이었겠지만, 나는 그저 고깔 모양의 뚜껑에 라면을 담아 먹는 그 순간이 좋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컵라면 용기를 자랑스럽게 꺼냈다. 깨끗하게 씻은 육개장의 오목한 스티로폼 안에는 어제의 즐거움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맵싹한 라면 냄새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하얗고 깨끗한 컵라면 그릇만 챙겨 왔다. 우리는 컵라면 용기를 가지고 가면을 만들었다. 나는 온종일 가면의 라면 냄새를 맡아야 했다.


그 날의 기억이 육개장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가 육개장과 삼각김밥을 샀다. 땀내 나는 교복을 입고 집으로 가는 길 동네에 처음 생긴 작은 편의점에서 먹었던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아직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다.


잘 가라. 육개장과 참치마요 삼각김밥. 입 안에서 바스라지다가 굴러다니며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다 보니 오늘 하루가 조금은 위로가 된다. 뱃속은 든든하고 한기 들었던 가슴은 뜨뜻하다. 앞으로 유난히 허전한 날이면 육개장과 삼각김밥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잡을 길 없이 지나간 버린 것이 남긴 허기는 가장 평범하고 단출한 음식으로 제 지내야 한다는 작은 깨달음과 함께.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는 '처음'해보는 일들이 줄어든다는 물리적인 숙명과 '처음'이 아닌 일들만 반복하는 게으른 관성이 기억 속에서 나의 단순한 일상을 뭉티기로 지워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멀어진 일이라 잊어버리고 익숙한 일이라고 무시해버린, 어디에나 있던 단순한 기쁨들은 떠나는 배 뒤로 홀로 남은 섬이 되었다. 시간의 배를 탄 어른의 삶은 고되고, 배를 흔들어대는 파도는 털어내도 따라 붙은 먼지처럼 집요하다. 그러나 잊혀진 섬일지라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살아있음의 연옥에서 단순함이 행복의 씨앗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나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복잡하지만, 단순한 것들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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