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장 Jun 09. 2020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막 사는 것도 계획이 필요하다

또 밤을 샜다.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도 '불면'이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잠을 들기까지가 어려울 뿐 가끔은 아주 오래 자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왜 피곤하지' 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내가 피곤한 이유가 궁금해서 나의 하루의 일과를 적어 놓기 시작했다.

이 습관은 내 정신건강에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설거지든 퍼즐게임이든 크고 작은 일을 적어놓고 보면 의외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특히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고 내가 하찮게만 여겨지는 시기, 피곤해도 잠을 이룰 수 없고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거 같으며 이번 생은 정말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하루 하루 적어 놓은 나의 일과와 감정, 그 날의 컨디션을 읽어 보면 내가 그래도 나름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는 있구나 하는 생각들었다.

 

어제도 그런 기대로 스케줄러를 펼쳐 들었다.

내 머리로는 절대 기억하지 못 할 이번 해와 지난 해의 시간을 느린 버스를 타고 여행하듯 훑어 보았다.

부당함을  주장하며 200장이 넘는 서류를 작성하고 22회의 면담을 하고,

150여권의 책을 읽고 독서록을 작성하고,

따뜻한 인연을 찾아 30회의 독서모임을 했고,

3주에 한 번은 병원과 상담소를 찾아 내 마음을 탐색하고,

25회의 강연과 공연을 들었고,

6개월은 경제 신문을 읽었고,

300개가 넘는 리뷰를 쓰고

블로그와 브런치에 60편이 넘는 글을 썼고

각종 공모전에 도전하고, 동생을 도와 국가사업 공모와 해외 고객 마케팅을 돕고

매주 가족들을 돌보거나 가족행사가 있었고, 1년에 4번은 가족 여행을 갔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친구들 덕분에 난생처음 네일샵도 가보고 찜질방도 가고 꽃꽂이도 해봤고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노래자랑도 나가서 어쩌다 티비 출연도 하고

눈물을 참으며 오랜 친구의 결혼식 축가도 불러보고

남편이 좋아하는 캠핑을 쫓아 다니며 풀냄새와 물냄새를 구분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공간을 찾아 크림이와 책읽고 글쓰고 멍때리며 하루를 보내 보기도 하고

매일 강아지 크림이를 돌보는 수고와 기쁨도 느껴보고

남편이 베푼 사랑과 희생을 배우고..


그리고 정확히 1년 전부터 삐그덕대는 내 일상이 보였다.

3개의 시험에 도전했고, 3개의 공모전에 도전했다.

툭 하면 밤을 샜고, 끊임없이 소화불량과 장염, 두통, 염증에 시달렸다. 


복직할 시기는 다가오고 다시 조직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참고: 조직부적응자의 고백

https://brunch.co.kr/@gimme87/1 )

매일 불안해 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밥벌이를 해야 할지 고민과 자괴감에 휩싸여 있었다.

스케줄러를 새로 펼치는 날마다 그 날의 감정과 날씨, 건강상태 그리고 일정은 내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생각보다 자주 아팠고, 가족행사가 있는 날 외에는 대부분 방안에 처박혀 책과 씨름하고 있었으며 내 욕심껏 해내지 못한 것이 애달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말간 아침해가 뜰때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쉬지를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햇빛이 집 구석구석 비집고 들어와도 잠이 오질 않았다. 방으로 가 선잠에서 깬 남편 옆에 누웠다. "나 내가 미쳤었다는 깨달았어. 나는 내가 이렇게 아픈 줄 몰랐어.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니었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어."

남편은 내 얘기를 듣고 말했다.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잘 쉬지 못한다는 것이 모든 문제의 이었다.

잘 쉬지 못한다는 것은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일견 열심히 사는 것같지만 사실은 노력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나는 몸살이 날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편이다.

죽으라고 달리면서도 내가 더 빠르지 못해서 못마땅해 한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잠시 멈추는 것은 두렵다.

한 번 멈추면 다시는 달리지 못할까봐 한 걸음이라도 더 가려고 무거운 발을 뗀다.

남편은 가끔 내가 무섭다고 했다.

무언가에 열중할 때면 그 집중력이 내뿜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내가 남편의 직장동료라면 자기불안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살아온 시간 만큼 켜켜이 쌓인 단단한 껍질을 뚫고 말랑한 속살을 보기 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 이유란 내가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내 자신이 열등하고 못난 존재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했다.


내 친구는 내가 스스로의 노력을 폄하하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일례로 고등학생 때 친구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 할 수 있어?'라고 물었는데 내가 '정석 5번만 보면 돼.'라고 무심코 대답하더라고 했다. 친구는 그 힘든 일을 별 거 아닌 듯 쉽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 당황했다며, 아마 그런 면면들이 성적에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의 불안감을 자극했을 거라 말했다. 다행히 내 친구는 전교 1등이었고 나는 그보다 훨씬 못미치는 성적이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를 무시해서 한 말은 아니라는 그런 믿음 같은 거랄까.  


나는 열심히 하고 생색내는 귀여운 맛도 없고, 열심히 한 것을 숨기고 내숭떠는 새침한 맛도 없다.

주로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열심히의 준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어려운 준이기에 그것이 타인의 불안을 자극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타고난 천재보다 노력하는 범인을 더 시기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일 수록 더 그렇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나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더 열심히 사는 이들을 보면 나를 반성하게 되고 자괴감이 든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일 수록 더 시기질투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아역 빵꾸똥꾸 지진희는 시청자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가난해서 꾸질꾸질한 서신애는 '어린 애가 궁상'이라며 악플 세례를 받는 현상을 깊이 고찰했던 어떤 글에서는 실제 우리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신애에게는 사랑과 관용을 베풀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꼬집었더랬다.

특별할 수록 더 특별한 삶을 살고 빈약한 조건과  곤궁한 환경에서 자라온 자는 자꾸만 치이고 다친다.

어렸을 때부터 멀리 보고 멀리 가라는 가르침을 받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은 패배하지 않고도 습관적으로 열패감을 느낀다.

진짜 굶는 것도 아니면서 굶어 죽을까 걱정하고 살아 남는 것 자체가 과업인 듯 모두가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범인들은 

피해의식 한 꼬집을 곁들인 낯선 것들에 대한 혐오, 원인 모를 분노가 되돌아온 화살처럼 자신을 찔러대는 자책

그럼에도 충분치 않다며 채찍질하는 자기계발 기조에 서서히 시들어간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대단한 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사히 어른이 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어렵다.


타인의 시선에서 노력에 대한 결과는 옳으나 과정은 옳지 않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타인의 결과는 바람직하지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인의 노력의 과정은 불쾌하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타인의 시선은 더더욱 가혹하다.


물론 단순하게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사랑스러운 매력과 약한 것을 보살피고픈 본능, 사회적으로 숭배하는 가치(예를 들면 미모, 학벌, 재산 등)와 뛰어난 정치적 두뇌 등등이 가미되면 이 또한 얼마든지 다양한 감정을 일구어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나에게 이익이 될 때 말고는 애쓰는 인간을 미워하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반박하기 힘들다.

사랑받으려 애쓰는 사람은 관종이라고 비웃고, 돈 벌려고 애쓰는 사람은 돈벌레라 비하 하면서도 속으로는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그들을 시기질투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자명한 사실이 녹슬어버린 무거운 창처럼 꼿꼿하게 마음에 꽂혀버렸다.


깊은 물속에서 살아 남기위해 허우적 거리는 사람은 우스워지지만

물 속에서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백조에게는 경탄한다.

자신도 속이고 타인도 속이는 암막 속의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하여 이루되 우아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보통의 인간인 나는 그 균형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다.

어깨를 곧게 펴고 보무당당하게 걸어봐도 이제껏 활개를 치던 바쁜 습관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다.

이사를 하면서도 불쑥 튀어 나오고,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불쑥 튀어 나온다.

모를 때야 모르고 지나가겠지만 내 안에서 튀어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상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다.

미워한들 더 나아지지 않고 숨기려 한들 숨겨지지 않는 다는 사실이 그 때마다 나를 멈춰 세우고 똑바로 응시하게 만든다.

'자 내 안의 못난이야.'


나에게 가장 자비로운 사람을 불러내 나를 다독인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막 살아 보자고 화통하게 웃어 본다.

그래도 괜찮지 않으면 계획이라도 짜본다.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하지 않기.

쓸모 있는 것은 마음껏 게으름 피우기.

재밌는 TV를 보며 생각 없이 웃어 보기.

심각한 고민 할 시간에 어린 아이 같은 장난 한 번 더 치기.

말도 안 되는 꿈에 도전하기.

무사히 잠에서 깨고 잠 드는 것에 칭찬하기.

맛있고 건강한 음식 챙겨 먹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 제대로 쉬기.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

상처 받은 나의 감정을 믿어 주기.


내 안의 못난이를 사랑해 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