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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Dec 05. 2022

엄마와 김치는 닮았다

김장하는 날

 매년 11월 중순엔 김장을 한다. 올해는 절인 배추를 구하지 못해 독립 2년 만에 다시 친정가족들과 같이 하기로 했다. 친정에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60포기의 배추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4개의 커다란 통에 절임배추가 가득하다. 저걸 다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여든이라는 나이의 부모님들이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빨간 고무장갑과 장화를 신고 배추 씻기 작업을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여러 번 반복하며 이 대야에서 저 대야를 4번씩 옮겼다. 마지막엔 채에 받쳐 물기를 뺀다. 배추의 물기를 빼기 위해 엎어서 차곡차곡 쌓는다. 몇 시간 동안 반복되는 동작을 하자 여기저기서 아픔을 호소한다. 네 번째 손가락과 다섯 번째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신다. 허리, 다리도 저마도 통증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쉬지 않고 빨리 끝내려는 친정오빠의 스타일은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 잠시 의자에 앉아 쉬어보지만 혼자 애쓰는 오빠가 짠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오빠, 쉬엄쉬엄 하자. 힘들지 않아?”

“빨리 끝내야지 언제까지 하게. 다른 야채들도 씻어놓아야 해."

 친정 오빠의 말이 야속하게 들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은 밤까지 계속 이어질 듯하다. 절임배추, 갓, 파를 씻었더니 어두워졌. 친정오빠와 나는 절임배추 60포기와 한판 승부를 끝내고 돌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통증을 호소하던 삐뚤어진 허리를 맞추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김장소 만들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찾아 확인해 본다. 새벽 5시다. 친정엄마가 혼자서 김장소를 만들고 있었다.

“엄마, 우리랑 같이 하지. 왜 혼자 하느라 그래요?”

“엄마가 팔이 온전치 못하니 이런 거라도 미리 해놓으면 너희가 쉽지. 어제 너희들 많이 힘들었지.”

“엄마는 평생 했으면서. 이젠 우리가 할게요.”

 엄마와의 대화를 듣고 오빠가 일어났다. 갓, 파, 생강, 마늘, 고춧가루, 명태, 육수를 붓고 김장소를 만든다. 매운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참 오랜만에 보는 빨간색 고무대야, 반갑다. 어릴 적 엄마는 300포기의 김장을 하기 위해  여러 번 김장소를 만들었다. 어떻게 두 분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하셨을까.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김장소가 준비되고 본격적으로 버무리기를 하기 위해 김장 매트를 깔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아빠가 배추를 다듬어 주면 우리는 배추를 버무린 후 김치통에 예쁘게 차곡차곡 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김장하는 날이면 보쌈을 삶아서 먹었다. 이번 보쌈 만들기 담당은 바로 나다. 다른 가족들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보쌈을 삶는다. 보쌈을 삶는 방법은 사과, 양파, 생강, 통마늘, 쌍화탕, 월계수 잎을 넣는다. 물을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에 굴을 넣은 김장 김치와 백김치를 담았다. 1시간을 삶은 보쌈은 검은 빛깔을 띄며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예쁜 접시에 가지런히 옮겨 담았다.

다 같이 둘러앉아 바로 한 김치에 보쌈을 얹어 입 속에 넣었다.

"음, 어쩜 보쌈과 김치의 궁합이 이렇게 잘 맞지?"

"엄마, 백김치랑 먹어도 너무 맛있어요."

우리는 서로 각자의 취향대로 백김치와 굴김치를 싸 먹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가장 맛있는 보쌈은 김장을 마치고 우리가 만든 김치와 함께 먹는 거다. 정신없이 배를 채우고 나자  피로감이 몰려든다. 잠을 깨기 위해 커피타임을 가졌다. 서로 애썼다 고생했다 덕분이다 든든하다 말을 하며 감사 표현을 했다.




엄마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신다.

"이제 김장도 했으니 한동안 든든하겠다. 3년 동안 병원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 김치 얻어먹었더니 미안하더라.  내 김치가 있어야 든든한 거야. "

엄마는 김치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셨다. 엄마의 든든하다는 말은 그 옛날 특별한 반찬이 없을 때 김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김치보다 더 맛있는 것들이 많은 시대인 것을 엄마는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듯 보인다.

엄마의 김치는 엄마를 닮아서 고집스럽게 빨갛고 시원했다. 엄마의 말처럼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울 김치를 보니 든든하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든든하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나의 든든함이란 엄마의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는 양념과 조화롭게 이루어진 다양한 맛이 힘들 때 위로해 줄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통해 힘든 일도 툭툭 털고 이겨낼 수 있다. 엄마와 김치는 닮았다. 숙성될수록 몸에 더 좋다. 엄마의 사랑도 오래될수록 더 깊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김치와 함께 나는 나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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