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찍은 바디프로필 원본 사진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몸이라는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어색해 보인다. 500장 사진 중 유독 내 눈에 들어온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본다. 왼쪽과 다른 오른쪽 찌그러진 엉덩이. 어릴 적 화상을 입어 울퉁불퉁한 모습이 저렇게 아름답고 경이롭다니.
사진을 넘기다가 또 멈췄다. 세 번의 수술을 한 수술 자국이 이제는 희미하게 남겨져 있다. 예쁜 배꼽은 사라지고 못난이 배꼽이 자리했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소중한 옷이다. 처음에는 깨끗하고 보드라웠지만, 이제는 여기저기 삶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 흔적들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잘 이겨내줘서 고마워. 이제는 좋은 흔적들만 쌓길 바래. 폭풍 같던 삶이 지나가고 이제는 평온한 삶이 기다리고 있어.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
몸이라는 옷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다.
2024년 6개월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된 도전기의 최종 마지막을 장식하는 날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단수를 하고 유산소를 1시간 달렸다. 미칠 것 같은 갈증이 났지만 몇 시간만 참으면 길었던 나만의 프로젝트가 끝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계속 달렸다.
그동안 애썼던 시간들이 영화필름처럼 지나간다. 피트니스 센터를 고르기 위해 상담하러 다니던 시간, 처음 PT수업을 받던 날,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밤마다 붙였던 파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수십 번 들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몸이라는 옷을 입어야만 끝나는 나만의 깊은 뜻이 있었다.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탄탄한 몸이다. 과거의 볼품없던 몸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나야만 가능하다. 둘째, 태닝이다. 까만 피부가 근육이 훨씬 잘 보인다. 태닝을 하려고 많이 고민했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과감히 포기하고 운동에 집중했다. 셋째, 왁싱이다. 살면서 브라질리언(올누드)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 출산도 한 엄마이지만 처음 하는 것들은 언제나 떨렸다. 생각보다 참을 만했다. 넷째, 의상이다. 처음에는 힙하게 입고 찍으려고 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몸에 근육이 붙자, 용기가 생겨 속옷을 입기로 결정했다. 다섯째, 마음에 드는 사진관을 찾는 것이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바디프로필로 검색하면 수십 곳이 뜬다. 그중에서 내가 생각한 콘셉트를 잘 찍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트레이너는 반차를 써서 함께 동행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을 하고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운동도 가르쳐주고, 인생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채울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에 감동이었다.
헤어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샵에 도착했다. 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의 콘셉트를 말씀드렸다. 결혼식 이후 풀메이크업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밉밉한 얼굴이 입체적으로 변해갈수록 젊은 시절의 내가 보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속눈썹도 한 올 한 올 정성껏 붙여주시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모습은 따뜻했다.
소통의 문제로 메이크업 후 1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지만, 담당 선생님의 진심 어린 사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다만,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섬세하게 꼼꼼하게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자, 상대도 좋은 사람이 되어 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 좋지 않았던 일들도 좋은 일로 바뀌면서 트레이너와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2024년 9월 10일 나의 가장 젊은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사진관으로 이동했다.
1인 사진관이라 촬영 10분 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근처 카페에서 1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연히 들어간 뚜쥬루는 천안에서 유명한 빵집이었다. 단수 중이라 먹을 수는 없었지만 끝나고 맛있는 빵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생각에 셀레었다.
사진관으로 들어서자, 사진작가님과 스텝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트레이너와 함께 빨리 근육들을 끌어내기 위해 박카스를 먹으며 펌핑했다. 긴장한 탓에 근육들은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준비한 포즈를 선보이자, 찰칵 소리가 계속 들렸다.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사진작가님의 요구대로 몸을 비틀고, 멈췄다. 순간의 힘을 끌어모아 근육들을 소환하며 찍고 또 찍었다. 90분 동안 정신없었던 촬영이 끝났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오늘 함께한 4명의 사람들은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세상의 단 하나뿐인 옷, 몸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똑같은 옷은 없다.
살아온 삶에 따라 모양, 색깔, 냄새가 모두 다르다.
내 몸의 앞모습은 세 번의 수술자국이 있고,
뒷모습은 화상으로 찌그러져 있다.
인생의 반을 살아보니 알겠다.
옷이 인생 성적표라는 것을.
내 인생 성적표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많은 흔적을 남겼다.
흔적들을 보며 나는 더 멋진 옷으로 만들어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향기와 무늬를 담고 있다.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기에 더욱 멋지다. 앞으로 나는 어떤 경험을 하며 남은 인생을 채워나갈지 기대가 된다. 기대되는 삶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