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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Jan 16. 2023

나의 마지막 순간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거다


인생이란
순응하면 등에 업혀가고
반항하면 질질 끌려간다.
- 세네카


2022년 1월 30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낮았다. 한두 번 소식을 전한 것 같지 않은 목소리로 급하게 오지 말고 조심히 와달라고 했다. 남편은 한참 멍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 풍경을 본다.


한참 뒤 그가 꺼낸 첫마디. 가자. 그렇게 시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코로나로 인해 요양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남편 혼자 아버지를 만나러 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시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 한평생 미움 가득했던 아버지를 보내는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차 안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나는 주책없이 눈물만 흐른다. 시아버지가 불쌍해서도 아니고, 남편이 안타까워서도 아닌 그저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다. 평생 미움 가득했던 남편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에 "염병할 꼭 명절에 저런다"며 욕하는 시어머니. 안타깝다. 60년 가까이 살았지만 그녀에게 남편은 미움의 대상일 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처럼 매몰차게 말하는 이의 잘못인가. 평생 폭력을 행했던 분의 당연한 업보인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늘에 가시면 좀 더 나은 삶을 사실까.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목욕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생기 있게 화장을 하고 최애 립스틱을 바른다. 휴대폰을 삼각대에 끼운다. 나의 생각이 글로 탄생한 장소인 책상에 앉는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긴다. 내가 없어도 그들이 힘들어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마지막 메시지를 전한다.


“남편, 그동안 든든하게 옆에서 손잡아 주고 응원해 줘서 고마워.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싶다. 단점 많은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던 당신의 품이 참 좋았. 남은 삶은 우리의 멋진 추억을 떠올리며 편히 지냈으면 좋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당신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산 것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봤으니깐. 그래도 돼. 어디를 보아도 내가 웃고 있을 거야. 함께 한 50년의 삶 나에겐 축복이었어. 덕분에 참 많이 성장했던 시간이. 나를 많이 사랑해 주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 당신을 많이 사랑.”

 남편은 영상을 보며 눈물 한 방울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을 거다. 서로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 주었던 50년의 시간은 이렇게 끝이 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받던 날이 떠오른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것은 너를 낳은 거란다. 네가 없었다면 진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거야.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던 엄마가 너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단다. 너를 지키기 위해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었단다. 그렇게 너와 함께하며 단단해졌고 많이 행복했어. 작은 행복을 선사한 천사 같은 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나 소중한 나의 딸아, 지금 너도 엄마의 삶을 살아가며 너의 아이가 보내는 사랑에 행복하지. 사랑받은 만큼 너의 가족과 주변에 많이 나눠주는 삶을 살렴. 엄마의 바람대로 구김 없이 잘 자라고, 당당히 너의 몫을 해내 살아가는 너를 보면 흐뭇하단다. 너를 처음 안았던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엄마는 너에게 감사할 뿐이란다. 엄마에게 와줘서. 부족한 엄마를 항상 최고라고 말해줘서. 네가 건네는 말에 더 당당하기 위해 매 순간 허투루 살지 않았단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엄마 매 순간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었단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예쁘게 사랑하며 살렴. 사랑한다, 영원한 나의 아가야.”


이 세상에 와서 내가 배운 것들에 감사하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남아 있는 친구들과 나의 손주에게도 일일이 영상편지를 남겨두고 싶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의 메시지를 통해 아이들은 더 바르게 성장하겠지.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소중한 사람들인지 알게 될 거다.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 축복받아야 함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서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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