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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r 30. 2023

긴 머리 돌려주세요

선택도 결과도 내 몫

3년의 코로나 기간 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어깨까지 오던 머리는 가슴 아래로 길게 자라 있었다. 2023년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 큰 결심을 하고 주변 미용실을 검색했다. 일주일 뒤 명절기간이라 전화하는 곳마다 예약불가다. 처음 보는 별 미용실. 자리가 있길 바라며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혹시 예약가능할까요?”

“어떤 걸 하실 건가요?”

“매직세팅을 하려고 합니다.”

“네 가능하세요.”

다행이다. 일주일 뒤엔 상큼한 모습에 나와 마주치겠지.


 새로 오픈한 미용실은 화이트톤으로 깔끔했다. 밖에서 볼 때보다 내부가 훨씬 넓었다. 원장님은 가볍게 인사하고 바쁘게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가운을 입고 대기를 하며 인테리어를 감상하니 제법 재밌다. 서울에서 오셨다는 원장님은 다른 미용실에 없는 안마기가 있었다. 머리를 감으며 안마를 받는 거다. 신선했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원장님은 이리저리 내 머리를 살펴보았다.


“고객님, 굳이 매직세팅 안 하시고, 깔끔하게 끝부분만 일반펌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가능할까요? 제가 생각보다 곱슬이 심하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삼각김밥이 되어버려서.”

“고객님은 일반펌으로도 충분히 스타일 나오세요. 앞머리를 살짝 길게 잘라서 내려오게 하면 훨씬 더 멋스러울 겁니다.”

“그래요? 그럼 원장님 한번 믿어볼게요.”


 역시 펌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가만히 앉아서 견디는 시간. 아이가 추천한 책을 읽으며 아이는 어느 곳에 멈췄을지 들여다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원장님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네 없습니다. 머리가 어떻게 나올지 너무 기대돼요. 원장님 아까 옆에 분 머리 너무 예뻤어요. 감각 있으신 것 같아요.”

원장님은 살짝 웃으시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실은 제가 서울서 연예인 메이크업을 오랫동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 미용으로 전향하자, 감각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듣네요.”

미용실 안은 우리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3시간 만에 드디어 머리를 감으러 갔다.


어떻게 나왔을까. 젖은 상태에서는 잘 모르겠다. 머리 점점 말라갈수록 나의 표정엔 웃음기가 시라졌다. 원장님의 말수도 줄었다. 드디어 머리 완성.

제발 삼각 김밥만은 아니길 바랐지만 나의 머리는 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이 되어 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우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원장님이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건넸다.

“제가 다시 해드릴게요. 고객님은 매직을 하셔야겠네요. 며칠만 머리를 묶고 다니셔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뒤 설날인데 이 머리로 명절을 보내게 생겼다. 원장님의 얼굴을 보니 화낼 기력도 없다.

“알겠어요. 원장님.”

이 말 외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남편과 아이가 머리 모양을 보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엄마, 괜찮아요? 완전 삼각김밥인데요.”

누구보다 나의 상태를 알고 있다. 아이의 말이 섭섭하기보단 정확한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나의 선택이었으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괜찮다. 괜찮다. 외쳐보지만 괜찮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자꾸만 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이다. 남편이 조심스레 다가온다.

“괜찮아?”

“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 같아.”

그 말에 남편은 웃음을 참아보지만 결국 터져버렸다. 아이가 다가와 묻는다.

“그게 누구예요?”

“인터넷 검색해 봐.”

아이가 열심히 검색 중이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한참 들렸다.

“엄마 정말 똑같다. 완전 웃겨.”


마음껏 웃어도 된다. 덕분에 다들 엔도르핀이 생성된다.

살짝 곁눈질로 다시 강혜정을 쳐다본다. 웃음이 나온다. 이 머리를 어찌해야 할까. 선택내 몫이고, 결과도 내 몫이다.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출처. 네이버사진


메인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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