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으나, 잊지 않았는데.
이 마음은 어떤 단어로 형용해야 할는지. ‘슬프다. 아쉽다. 그립다. 어안이 벙벙하다.' 정도면 적당할까. 아니다. 정확지 않다. 한 단어로 꼬집을 수 없는 이 내 마음 나도 모를 노릇이다. 미각이 섬세하지도, 고급지지도 않은 사람으로 편식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무언가에 빠져들거나 덕질을 하거나, 열광하는 성격도 아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번거로운 길은 피해 가자는 게 나란 사람의 신조였다. 고로, 사람이 바글대는 맛집은 어중띤 시간 운 때가 맞으면 찾아가는 곳이지 줄끝에 서서 맛을 기다릴 열정은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내게도 소중한 맛집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길. 손. 짬. 뽕.'이다.
20대 후반이었던가. 생활의 달인에서 수타면의 최강 달인으로 선정된 주방장이 마침 대구에서 식당을 한단다. 좀 쫄깃한가? 큰 기대감 없이 방문했다. 수타면의 달인답게 시그니처는 수타 짬뽕이었다. 그릇에 넘칠 듯 올려진 해물 하며, 얼큰한 국물 하며 돈이 아깝지 않을 맛과 비주얼이다. 여기저기 후룩후룹 면치기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졌다. 명치에서 올라오는 '키야' 소리도 이따금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집을 사랑하게 된 진짜 이유는 짜장도 짬뽕도 아니요, '탕수육' 때문이었다.
새하얀 옷을 입은 탕수육의 비주얼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두툼하게 네모지게 자른 돼지고기가 새하얀 모시를 입은 듯 얇고 바삭한 튀김옷을 입고 기름에 살짝 반신욕만 하고 나온 듯 담백했다. 탕수육 고기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고, 함께 나온 투명하고 상큼한 소스에다 퐁당! 발만 담그게 한 뒤 먹으면 아삭하게 씹히는 옷 안에서 살짝 흘러나오는 고기의 육즙. 육즙이 소스와 어우러져 맛의 향연이 시작됐다. '하아. 그래. 이런 맛에 사는 거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거구나. 깊은 탄식과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언짢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으면 "길손 가서 탕슉 한 그릇?" 외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연애시절 투닥대다 찾는 곳도 길손이었다. 2014년 11월의 마지막 주에도 말이다. 바로 도담이의 출산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으로 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대구라 해도 우리 집에서 곧장 달려 30여분의 거리였다.
"여보, 모유수유 중에는 한동안 튀김 못 먹겠지? 외출하기 어려우니 먹어둬야겠지?" 종알대며 사랑하는 탕수육을 먹을 이유를 만들었다. 예정일에 임박해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몰라. 출산하고 나면 불어난 나의 덩치에 합당한 익스큐즈를 달 수 없으니 한 번만 더 먹자. 예정일 보다 며칠 늦게 태어난 도담이 덕에 탕수육을 한 번 더 먹을 수 있었다. 날 때부터 효도했구나.
양껏 먹은 탕수육의 힘으로 도담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신랑이 기력 떨어진 와이프를 위로하듯 모처럼 탕수육을 권했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전을 한 것도 아니고 폐업을 했단다. 전혀 친분 없는 사장님께 이토록 서운할 수가 없다. 나에게 알려야 할 의무 따위 없지만 혼자 섭섭해 팔짝 뛴다. 낙담한 나를 위로하려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던 신랑이 외쳤다. 같은 이름의 식당이 대구에 또 있단다. 그곳으로 이전했을지 몰라! 호기롭게 찾아간 그곳은 아주 같은 이름, 아주 다른 곳이었다. 아, 정말 님은 갔구나,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는데 가버렸구나. 깨달았다.
그렇게 탕수육을 잊어가던 2021년. 도동이를 임신하고 또 미친 듯이 길손짬뽕의 탕수육이 먹고 싶어 진다.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게 하필 탕수육이라니. 밤이 늦도록 검색을 하던 신랑이 외친다. "효나야! 길손 주방장님이 경주에 다른 이름으로 중국집을 오픈했네!" 아, 찾았구나. 나의 맛집이여, 나의 금손 탕수육 마스터.
다음 날, 한 시간을 달려 경주 '린짬뽕'에 다다랐다. 코로나 때문인지, 한적한 동네여서 그런지 붐비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짬뽕과 탕수육, 짜장면을 시켰다. 응?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탕수육이 변한 걸까. 비주얼도 맛도 달랐다. 분명 같은 주방장님이 맞으신데. 탕수육 만드시는 분이 다른 분인가. 먹는 내내 물음표가 가득이다. 추억과 다른 느낌이었다는 거지, 맛이 없는 탕수육은 아니었다. 너무나 애틋했던 사람을 한 세월이 지나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탕수육에 오만가지 감정이 이입된다. 어쩌면 음식이 변한 게 아니라 내 입맛이 변한 거겠지. 어쨌든 추억 한 그릇 맛있게 먹고 행복했으니 태교 음식으로 만점이었다.
쏘아놓은 화살처럼 또 2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경주에 바람을 쐬러 간 김에 불현듯 또 옛 친구가 떠오른다. 조금 달라진 맛과 비주얼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만나고픈 탕수육이었다. 브레이크타임을 확인하려는데, 어랏? 인터넷에 가게 정보가 없다. 분명 예전엔 있었는데. 그렇다. 다시 사라졌다. 나의 탕수육과 두 번째 이별이다. 처음 겪었을 때보다는 충격이 덜했지만 허전한 마음은 여전했다. 추억으로 버무려진 맛이 이젠 기억 속에만 존재해야 한다는 아쉬움 말이다.
탕수육을 향한 한동안의 집착에 대해 생각했다. 음식은 대체 우리에게 뭘까. '맛'은 우리의 삶에 얼마큼이나 자리를 잡은 걸까. 허기를 채워주는 이상의 가치임은 분명하다. 내 20대의 후반, 불안하기 짝이 없던 날들이 있었다. 작은 잎에도 흔들릴 만큼 위태했던 나날에도 따듯하고 바삭한, 달콤한 탕수육 한 접시면 일주일의 고단이 녹아 내려갔었다. 모아놓은 돈도, 이렇다 할 것 없는 삶이면 어떤가. 둘이 앉아 짬뽕에다 탕수육 한 그릇 놓을 수 있는 정도 된다면 그걸로 나쁘지 않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순항 중이구나.' 위안 삼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고마운 기억이다. 비록 지금은 잃어버렸을지라도. 추억과 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으로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게 바로 음식과 맛의 위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