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스타
어느 통계에 의하면 직장인이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요일이 월요일이라고 한다.
주말 동안 몸 만들어와서 마시기 때문이라나?
믿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우리는 월요일에 술을 마시러 갔다.
힙지로라는 신조어로 불리는 을지로의 낡은 골목에 자리 잡은 레드스타.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친구가 추천한 술집이다.
친구는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저녁식사를 하러 여러 번 들렀다고 했다.
입구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여자 두 분의 목소리가 불길하다.
"여기 자리 없으면 저기로 가자."
그 소리를 듣자 손이 다급해졌다. 어서 빨리 손잡이를 잡기 위해...
아무리 맛있어도 대기시간과 만족도는 반비례하니까.
서둘렀던 마음이 무안하게 가게 안은 한산 했다.
그 여자분들은 다른 가게를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테이블석과 바석 사이에서는 별로 갈등하지 않는다.
바 자리 착석.
친구가 추천한 안주는 광어 카르파치오, 으깬 대구 감자 바칼라*, 적된장 돼지 목살 구이였지만, 우리는 술부터 먼저 시켰다.
양식당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안주의 면면이 일본을 연상시켰으므로 "하이보루 쿠다사이(하이볼 주세요)."
실제로 저렇게 말한 건 아니고,
하이볼 2잔과 광어 카르파치오, 김금표 라자냐*를 (당연히 한국말로) 주문했다.
친구가 추천한 으깬 대구 감자 바칼라와 적된장 돼지 목살 구이는, 박풀고갱이 비선호하는 감자가 들어 있었으므로 패스.
하이볼이 기대했던 산토리 전용잔이 아니라 서양식 칵테일 잔에 담겨 나옴으로써 이 식당이 양식당으로 분류됨을 증명했다.
광어 카르파치오는 담백했지만 샐러리가 향긋함을 포인트 했다.
통후추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입안에서 터지는 통후추의 알싸함이 신선할 수는 있겠지만 걸리적거렸다.
카르파치오(carpaccio)란 얇게 슬라이스 한 날것의 소고기 위에 마요네즈, 우스터소스, 레몬주스를 넣은 소스를 뿌려 먹는 이탈리아 요리라고 하는데,
카르파치오든 뭐든 익히지 않은 광어는 한국사람에겐 회.
회에는 소주인데 메뉴판에 없었다.
대체재로 시킨 화요가 나올 때 즈음에 광어는 접시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화요는 서양식으로 하면 온 더 락(on the rock), 일본식으로 하면 로쿠데(ロックで)로 마셨다.
화요의 맛이 일본 청주와 비슷했기 때문에 자꾸 일본 여행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광어 카르파치오가 클리어 될 무렵 김금표 라자냐가 나왔다.
라자냐면 라자냐지 왜 김금표인지?
행여나 다음 기회가 있다면 물어봐야겠다.
라자냐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깊은 숲 속의 이끼 낀 나무 그루터기를 연상시켰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감태( カジメ)라는 식재료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역시 우리에겐 일본을 연상시키는 술집이다.
라쟈냐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바삭한 감태 아래에 밀가루 반죽과 버섯들이 켜켜이 향긋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엇보다 크림소스가 너무 맛있었다.
짭조름한 라자냐를 중화시켜주면서도 본연의 크리미 한 맛을 뽐냈다.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라자냐까지 클리어했는데 술이 남았다.
어디 보자! 이번엔 뭘 먹어야 하나.
허기를 채운 상태니까 미각은 더 까다로워진다.
신중하게 트리빠를 골랐다.
트리빠(Trippa)는 이탈리아어로 '소의 위'라고 한다.
메뉴판에는 매콤한 소스에 볶아 낸 벌집 양과 가지 튀김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트리빠든 뭐든 한국인에겐 양곱창요리.
양곱창엔 소주인데.... 주인장이 메뉴판에 소주를 등극시켜주시길 부질없이 기대해본다.
트리빠는 짜고 강한 토마스 소스와 담백한 가지 튀김이 짠 담 짠 담 하며 잘 어우러졌다.
트리빠에도 통후추가 올려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거슬리지 않았다.
알콜 효과로 둔감해진 탓인가.
트리빠도 디쉬 클리어.
우리가 골랐던 안주는 이탈리아 요리를 한국과 일본 식으로 해석한 느낌이었는데 메뉴판을 보면 미국, 영국 , 포르투갈, 일본 등 각국의 요리를 메쉬 업한 요리를 내놓는 것 같다.
언젠가 라자냐를 먹으러 다시 찾아야겠다.
* 라자냐 : 이탈리아 파스타 요리. 얇은 직사각형 모양의 반죽을 재료와 층층이 쌓아 오븐에 구워 만든다고 함.
* 바칼라 : 포르투갈 사람들은 말린 염장 대구인 바칼라우(Bacalhau)를 즐겨 먹어서 바칼라우를 재료로 한 음식이 무려 천 개가 넘는다고 함.
♧ 평점 8
레드스타
서울 중구 수표로 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