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누가 되었든 간에

by 박지선

아기가 이전에 촬영한 CT 검사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간호사는 우리를 보며 ‘이번에도 아기’라며 서둘러 안내해주었다. 그 찰나 내 뒤에서 꼬마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뭐야?”

왜, 라는 질문에 푹 빠져있는 꼬마 옆에는 아이 아버지가 서있었다. 뒤로 들리는 아이 아버지의 음성이 퍽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고선 지난밤 올렸던 글 제목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엄마뿐만이 아니지. 엄마가 아닌, 아빠든,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혹은 또 다른 삼자여도. 아이를 살뜰히 보살피는 따뜻한 손길은 누구더라도 상관없지.

병원에서 만난 그 아버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미혼부는 아기를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에 대한 권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따라오는데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뭘 그렇게 증명해 내야 하는 게 많은지, 절차가 꽤 까다로웠고 증명해 내기 어려운 조건들도 꽤 많았던 기억이 있다. (자세한 정보를 더 알아봐야겠다)

아이를 돌봐도 된다는 자격은 무엇에 근거해서 주어져야 하는지

너무 많은, 끔 짝한 학대 기사들에 잠 못 이루는 시간들만 늘어난다.​



양육자가 아무리 아이를 핍박하더라도 아이는 금세 웃는다. 양육자가 별놈이어도 그를 사랑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너무 쉽게 아이의 인권을 짓밟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별일 아닌 듯 머리를, 등짝을, 엉덩이를 때리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가볍게 생각했던 때리는 행동의 횟수가 잦아지면, 나중에는 점점 더 무뎌져서 후회할 일을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를 믿지 말라니까. 정말.


#네가뭔데 #생명경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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