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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Dec 18. 2019

도서 리뷰 [벌새]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 ‘벌새’ 속 인물 이야기들.

도서 리뷰 [벌새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 벌새’ 속 인물 이야기들     


이 리뷰는, 나 나름의 가장 어려운 숙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속한다. 

이 책을 나 스스로 [2019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 위한 이유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한 왜 어려운 숙제라고 명명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책이 영화 <벌새>와 떼어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영화의 이야기와 무관할 수가 없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은, 나처럼 영화와 영화 리뷰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책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그럼 그 다른 측면에서는? 단순히 일반적인 대중적인 책으로서는 어떤가, 라는 질문에서는? 그렇다면 이 리뷰는 결국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쏟아졌다 흩어졌다 모였다 하기를 반복했던 생각의 퍼즐이 합체한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작가가 직접 말하는, 영화 제작의 개인사적인 경험과 감정, 그것들이 스며든 과정이 담겨 있다. 

2장은,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무삭제판)가 펼쳐지며. 

3장부터 7장까지는 영화에 대한 소설가(최은영), 영화 평론가(남다은), 여성 운동가(정희진), 인권 운동가, 외국 작가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처럼 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간단한 리뷰일지라도 영화 후 감상평을 꼭 쓰는 이들에게, 이런 구성의 책은 영화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선물을 받은 기쁨이 넘치게 할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도 읽고(이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을 일이고), 영화 감상 평론들도 읽고. 이렇게 하다 보니 실제 138분짜리 영화에 뼈와 살을 더하다 보니, 완연한 장편 소설을 만나는 일이 되어 버린다.      


특히나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금상첨화. 아하, 이렇게 간결하게도 시나리오를 구성할 수 있겠구나,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덜어내고 빼내는 어마어마한 수정 작업을 거쳐서 이렇게 깔끔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냥 일반적인 책으로서는 어떤가!     

이렇게 읽어 보자.  


제2장의 시나리오를 먼저 읽는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는다. 그 다음에 다른 평론가들의 글을 읽어 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오롯이 작가와 직면하는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서사로 원형적인 서사로 만들고자 했던,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일상을 보여주려고 했던.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나의 아침독서 포스팅(12월18일)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책은 시나리오와 작가의 말만 읽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면, 나는 작가의 말을 서너 차례 반복해서 읽으면서 엄청난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꼭 내 얘기 내 경험 같아서. 영화 속 ‘은희’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화해의 방식에서 말이다. 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위로가 되는지 그 과정을 볼 수 있어서, 그래서 또 위안이 되었다.      


{은희, 허리를 굽혀 조아리며 인사를 한다. 은희가 계단으로 가려는 찰나, 다시 뒤를 돌아본다. 은희, 영지를 바라만 본다. 무언가 기다리는 표정. 은희, 영지에게 뛰어가, 껴안는다.      

은희 “저는 선생님이 참 좋아요.” 

영지, 은희의 포옹에 놀란다. 말할 수 없는, 그러나 감격한 표정이다.     

학원 복도, 두 사람의 긴 포옹. (시나리오, 142쪽)}     


이 장면에서, 나는 책을 읽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영화에서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책에서는 이 장면에 이 두 사람을 둘러싼 배경이나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어두운 복도 밖, 창밖으로 부드럽고 따스해 보이는 바람결이 느껴진다.      


책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에서 인물을 보면 그 입에서 어떤 대사가 나올지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영지와 은희의 몇몇 대사는 따라하고 말았다.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원작과 영화가 따라 노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이건 영화와 시나리오가 동시에 상영/출간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보기를 좋아하든, 책 읽기를 좋아하든, <벌새>의 영화와 책은 따로 놀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이야기와 책 속 이야기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의 생략된 심리와 서사는 시나리오로 보충받으면 되고, 시나리오 속 인물의 심리 상태나 감정은 영화 속 인물의 표정과 눈빛, 흔들리는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만나 보면 되는 일이다.(인물들의 표정과 눈빛이 정말 압권이다.)     

특히 영지, 은희, 은희 엄마, 수희 등 인물들의 표정, 불안한 눈빛들을 따라 가다 보면 내가 동요되고 몰입되고 넋을 잃고 만다는 사실. 그런데 영화를 보게 되면 더욱 불안해지고, 흔들리고, 그러다가 결국 뭉클해지는 경험을 한다는 사실. 그래 ‘이런 것이 위로야’라고 설명할 수 있으려나.      


{선생님, 잘 지내세요? 스케치북 정말 감사드려요. 나중에 만화를 그리면 꼭 선생님 캐릭터를 넣을 거에요. 선생님은 머리가 짧고, 안경을 낀 괴짜 캐릭터로 나올 거에요. 제 예감에 독자들은 선생님을 많이 좋아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시나리오, 192쪽)}     


김보라 작가(감독)는 자신의 글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만화 대신에 영화 또는 문장으로.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전달 받은 충만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 작가의 이야기는 어둠을 지나, 새벽의 여명 같은 밝음을 맞이하는 서사로 마무리된다. 

또한 상실과 슬픔을 넘어서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깊은 애도이다. 깊은 애도는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 무너진 다리를 바라보고 있는 셋. 강물은 너무나도 짙게 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몰아치는 바람 속에 무너진 다리를 바라본다. 뒤로 차들이 지나간다. 밤은 춥고 바람이 세차다. 은희의 볼이 발갛다. (...) 은희, 그러다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한다. 짐승처럼 목 놓아 운다. 그 울음에 수희와 준태는 놀라고, 수희도 훌쩍훌쩍 따라 운다. 그런 수희를 준태가 달랜다. 강물을 보며 엉엉 우는 두 자매와 준태} (시나리오. 200-201쪽)     


억울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오빠의 폭력 앞에서도 울지 않던 은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쏟아낸다. 치유의 과정이며 성장통을 겪는 대목이라 여긴다. 누구나 언제나 겪어야 할 성장통, 통과의례의 과정. 

어쩌면 은희의 엄마에게도, 영지 선생님에게도 필요했을 성장통 같은 눈물. 

그것을 은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 벌새’ 속 인물 이야기들     


어찌 보면, 이 책은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그 영화에 대한 읽기 자료(평론)를 만나는 것만으로 좋을 일이다. 하나하나가 단편으로서의 재미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심하라. 이 책을 읽다 보면. 특히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망에 빠지게 되니 말이다.      


나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책에서 시나리오를 한번 더 읽었다. 그러다보니 영화 속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충분히’(아직 영화 속 몇 군데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헤아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새로운 경험이 나는 참 좋다. 이런 경험을 하시고 싶은 분들, 이 책을 만나시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어느 소설 작가(영화 감독)와의 인터뷰 등을 하게 된다면,

또는 내가(저자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서) 독자와의 만남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의 제7장(김보라 작가와 앨리슨 벡델, 60여쪽의 많은 분량) 인터뷰 내용을 고스란히 따라서 하리라 다짐한다.      


Q.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느낀 감정이 궁금하다. 형용사나 명사, 아니면 몇 단어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Q. 맞다, 정말이다. 병원 신을 쓰고 난 후, ‘도대체 누가 어린 여자애가 병원에 다니는 얘기에 관심을 가질까?’ 하고 고민도 했다. 심지어 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러다가 그래픽노블 한 권을 읽게 됐다. 음... 질병에 관한 프랑스 그래픽노블인데, 본 적 있나?     

Q. (당신 참 사과를 잘 받아 내는 것 같다!) 그렇다. 사람들이 내 악마성을 알아보는 것 아닐까?     

Q. 당신은 모둥이를 들고 강요하는 유형이 아니다. 최종 편집본의 러닝타임이 얼마나 되나?     


등등. 재기 넘치는 질문과 답변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영화 <벌새>의 작자가 전하는 말을 직접 듣게 되는 듯한, 마치 작가를 대면하면서 시네마 토크(영화 상영 대신 시나리오)를 하는 듯한 현장감과 충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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