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 오는 저녁 & 흰밤
시 - 출처 /
eunbi | YES 블로그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당콩 : '강낭콩'의 평안북도 방언 * 바가지꽃 : 박꽃
* 박각시 : 박각시 나방. 밤에 꽃잎이 벌어지는 박꽃을 찾아 꿀을 빤다.
* 주락시: 주락시 나방 * 한불 : 하나 가득.
* 돌우래 : ‘땅강아지’의 평북 사투리. * 팟중이 : 팥중이. 메뚜기의 한가지
* 강낭밭 : 옥수수밭.
「박각시 오는 저녁」은 조선문학독본(1938.10)에 실렸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으로 볼 때 이 시의 후속편이라 착각할만한 시가 있다.
바로 「흰밤」이다.
녯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박각시 오는 저녁이 흘러 흰밤이 되었고,
박꽃이 지고 난 초가지붕 위엔, 달빛을 품은 듯 하이얀 박이 얹혔다.
고즈넉한 시골의 밤이 그려진다.
백석의 시는 언제 들어도 정겹습니다.
블로그 이웃님의 포스팅에서 시를 옮겨왔습니다
'박각시 나방'의 이미지가 하얗게 그려지고
시의 언어에서 우리네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삶이 그려져서
마냥 이유없이 좋아서
다시 읽어 봅니다.
'박각시 오는 저녁' , '흰밤'
박각시 오는 하얀 저녁이 또 그렇게 하얗게 밤이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언어의 마법.
그 마법에 하릴없이 빠져 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