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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이의 차이 나는 클래스

책 읽고 요리하고, 중학생 딸의 베이킹

10년을 넘게 도서관에서, 문화 센터, 지역아동센터, 학교 등 많은 기관과 집에서 요리 동화를 하며 아이들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채소를 싫어하던 아이가 채소를 맛있게 먹으며 해맑게 웃던 모습, 견과류를 싫어한다고 했던 아이가 견과류 듬뿍 들어간 씨앗호떡을 먹으며 행복해하던 일, 특정 소스를 싫어한다고 수업 시작 전 귓속말하던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소스가 들어간 요리를 먹는 모습을 보며 교사로 엄마로서 감사했던 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끝없이 질문하며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도록 했고 이것은 아이와 감정을 나누는 소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의견을 수렴하며 나누는 대화의 시간은 어려운 일을 해결하거나, 문제가 발행했을 때 가족회의로 이어져 해결할 수 있는 성장점이 되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요리 동화를 하며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늘 궁금했습니다. 동화를 듣고, 요리를 하며 이론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힘이 생기는지, 자기 주도적 성장과 자기 효능감을 자라게 할 수 있을지, 창의적 활동으로 확장되는지 항상 궁금했지요. 아이들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듯 원하는 것을 부모가 해 주길 바라기보다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면서 관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며 확장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요리책이나 딱딱한 교양서가 아닌 쉽고 재미있는 동화로 시작한 요리는 반죽을 주무르는 쉬운 일에서부터 어른도 어려워할 수 있는 오븐을 다루어 요리하기까지 많은 도전과 성공경험들이 쌓여 왔습니다.


기저귀 차고 큰 아이 옆에서 "나도 나도"를 외치던 둘째 아이는 어느새 자라 중학생이 되었고, 방학에는 베이킹에 푹 빠져 지냅니다. 아니, 푹 빠졌다고 하기보다 즐기고 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적당한 긴장을 가지고, 잘 안될 때는 투덜이가 되기도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새로운 방법을 고심하며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기특했습니다.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쿠키를 만들고, 재료가 부족할 때는 마트에서 구입할 목록을 요청하며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습니다. 얼마 전 남편의 지인들에게 간식으로 줄 쿠키를 주문했더니, 아이는 신이 난 요리사 마냥 밀고, 당기고, 자르고, 숙성하여 구운 후 보기 좋게 포장해 놓았습니다.

레시피를 유튜브에서 찾아 만든 아이의 요리 작품


그렇다고 아이의 꿈이 베이킹도, 요리사도 아닙니다. 아이의 꿈은 동화작가나 판타지를 쓰는 소설가지요. 이미 <용돈 교육은 처음이지?> 책의 그림작가로 등단했기에 자기의 꿈을 계속 키워갈 거라고 합니다. 아이가 즐기는 일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마음껏 상상하며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생각나면 수학 문제 풀고 유튜브 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반죽 볼을 잡고 베이킹을 시작합니다.


아이와 달리 엄마인 저는 베이킹을 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쉽게 요리를 배운 아이는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 바로 베이킹을 시작합니다.


아이가 요술방망이처럼 뚝딱! 베이킹이 가능한 건 주저함이 없어서입니다. 이것 때문에 안되고, 저것 때문에 안된다는 이유를 늘어놓지 않고 해보고 싶으면 바로 하는 즉 선택한 것을 주저하지 않고 실행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오며 가며 아이의 행동을 살펴보는데, 유튜브에서 찾은 레시피 영상을 보며,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드디어 잘 만들어진 '체크 쿠키'를 내게 맛보라며 건넵니다. 아빠가 아침에 드실 수 있도록 포장과 메시지도 남겨 놓았습니다. 아침에 이 쿠키 먹은 아빠는 몸도 마음도 가볍게 출근했답니다:)

중학생 딸이 만든, 왼쪽_엄마를 위한 쿠키 / 오른쪽_출근하는 아빠를 위한 쿠키

그냥 유튜브 보고 만들었다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너는 베이킹하는 앤 이고 엄마는 앤을 돕는 다이애나 같아. 쿠키 먹으며 빨강머리 앤 읽으면 좋겠다"


수요일 아침이 되었다. 앤은 너무 흥분한 탓에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해 뜰 무렵 일찍 일어났다. 어제저녁 샘가에서 물장난을 치는 바람에 심한 감기에 걸려 머리가 무척 아팠다. 하지만 폐렴에라도 걸리지 않은 한 그날 아침 앤이 요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앤은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오븐을 닫고 나서 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빨간 머리 앤 중에서...)

아이는 빨강머리 앤처럼 베이킹을 하기 위해 밤잠을 설쳤고, 덕분에 가족들은 맛있는 쿠키와 빵을 먹으며 즐거운 방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쌓인 경험은 아이가 쓰는 소설 속 소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나는 주방으로 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프라이팬을 보았다. 몽글몽글한 기름이 프라이팬에 달라붙어 있었다.
가스 밸브를 올린 뒤 가스레인지를 켰다. 탁탁탁탁 하고 불이 들어왔다. 키친타월을 꺼내 두 장 뜯어 프라이팬의 기름을 닦았다. 그리곤 햄을 굽고 밥을 뜨고 냉장고 안의 반찬을 꺼내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왼손엔 별 소식이 없는 폰을 들었다. 조용한 단톡방도 한 번 봤다가 검색창 옆에 돌아다니는 뉴스도 한 번 훑다가 별로 볼 것도 없는 영상도 하나하나 보았다.

학교 단톡방에는 몸조심하란 공지가, 뉴스엔 요즘 위기에 빠졌다는 HC-513의 입장을 해석한 글이, 동영상 안에선 실리 마이트에 대해 나열하는 자막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릇은 싱크대에 두고 반찬통은 냉장고에 원래 있던 위치에 놓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행주로 식탁을 한 번 닦고 내 방으로 갔다. ('마음의 고통을 위로하다' 중에서... by율)


큰 아이는 창의적 아이디어 실행력이 풍부해졌습니다.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설계도를 그리고 치수를 계산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또한 엄마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합니다.



내재적 동기는 창의력을 자극하고,
외재적 동기는 창의력을 파괴한다
- 애머빌 -


아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이루며 독창적이고 유용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내재적 동기가 먼저 움직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꾸준히 동화를 들려주며 실행해 볼 수 있는 요리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간혹 찾은 레시피가 현실과 다를 때 투덜거리는 말이 들립니다. 이때다 싶어 못 들은 척 슬쩍 지나가며 말합니다.


"반죽이 잘 안돼? 엄마는 이스트를 따뜻한 물에 풀어서 하니까 잘 되던데..."

아이는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듯

"그래요? 그럼 내일 그렇게 해 봐야지"

다음날, 아이는 또다시 시도하고 성공으로 이루어 냅니다.   


하루는 책 쓰기 수업을 위해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싱크대가 깨끗한 겁니다. 베이킹에 밥 먹고 난 설거지가 싱크대 한가득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피아노 학원 가기 전 설거지를 해 놓았습니다. 여느 날엔 설거지를 하더라도 음식찌꺼기며 새로 나온 컵과 그릇이 한두 개는 더 남아 있었는데 싱크대 물도 말라있을 만큼 깨끗이 정리되어있었습니다. 용돈 벌이를 위해 설거지를 종종 했으나 이렇게 말끔히 해 놓은 건 처음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요리와 동화'하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는 오늘도 책 읽고, 신나게 요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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