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된 마음

by 마감했나연

추천 곡) 별이 되지 않아도 돼 - 109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자님은 다르게 보였어요."


유원우의 말이 나연희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연희는 무심코 녹음 파일을 다시 들었다.
익숙한 질문과 답변 사이에서, 유원우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더 솔직하고 조심스러웠다.
음악이 자신을 숨기기 위한 수단처럼 느껴진다던 말, 기자들에게 속을 내보일 수 없었다던 고백.


그는 유명 밴드의 보컬이자 키보디스트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의외로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나연희는 그 이질감에 묘하게 끌렸다. 무대 위의 확신에 찬 모습과, 그 이면의 흔들림.

단지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라고 하기엔, 어느 순간부터 그의 말과 표정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녹음 파일이 끝날 무렵, 마지막 대화가 다시 귀에 꽂혔다.


"기자님, 재차 묻네요. 다음에 또 뵐 수 있겠죠?"

"음… 글쎄요. 기사 마감 끝나면야."

"그러면 기자님 괜찮으시면…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연희는 그 순간의 자신의 반응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번호요? 갑자기요?”

"아, 그게… 자주 묻고 싶은 게 생기는데, 매번 매니저 통해 연락하면 번거롭잖아요."


나연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저번에 명함 안 드렸나요? 그거 보면 되는데…"

그러자 유원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저한테는 안 주셨어요."

나연희는 살짝 당황한 듯 가방을 뒤적였다.

“아, 죄송해요. 지금 드릴게요."


그녀는 서둘러 명함을 꺼내 건넸다. 유원우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한참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 나연희가 출근해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낯선 번호지만 내용이 낯설지 않다. 어제 건넸던 명함을 통해 연락이 온 게 분명하다.


[유원우] 인터뷰 기사 잘 봤어요. 고맙습니다.


나연희는 순간 멈칫했다. 인터뷰 기사에 대한 피드백은 주로 소속사를 통해 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해오는 건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나연희] 아, 읽어주셨군요. 다행이에요!


잠시 후, 다시 진동이 울렸다.


[유원우] 덕분에 좋은 기사 나왔죠. 나중에 기회 되면 밥 한 번 대접하고 싶어요.


나연희는 피식 웃으며 답장을 쳤다.


[나연희] 말만이라도 감사해요. 앞으로도 기사 잘 써드릴게요.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별 의미 없는 인사일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짧은 대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둘은 주고받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자주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인터뷰와 상관없는 짧은 안부나, 뜬금없는 농담까지.


나연희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다르게 본다고 해서 시작된 일이긴 한데…"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그녀도 아직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유원우와의 세 번째 인터뷰 이후로 며칠간 일에 쉽게 집중하지 못했다. 그의 고백처럼, 그가 대중에게는 늘 강한 이미지로 비치기를 원하면서도, 내면의 고통과 고민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여운을 남겼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약점과 감정은 단순히 가수라는 직업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의 유원우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날의 인터뷰는 그저 일의 하나로 끝났어야 했지만, 나연희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연희는 또다시 유원우와의 만남을 준비해야 했다. 이번에는 그의 밴드가 대규모 투어를 마친 후, 앙코르 콘서트를 앞두고 추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후속 취재였다. 나연희는 그가 이전에 했던 고백들을 다시 떠올리며, 이번에는 그가 숨겨둔 감정을 조금 더 끄집어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유원우 씨, 이번 공연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팬들의 반응도 뜨겁고, 밴드 전체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죠." 나연희가 말을 꺼내자, 유원우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정말 오랜만에 하는 큰 공연이라서 긴장도 많이 했고, 동시에 그만큼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팬들이 정말 따뜻하게 반겨주어서 힘이 났습니다."


그의 말은 여전히 대중적인 답변이었고, 나연희는 그 속에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그녀는 유원우가 공연 후에도 여전히 내면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런 뜨거운 반응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감정의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나연희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유원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흔히 하던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 속에 감추고 있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어두워졌지만, 금세 다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이제 더 이상 팬들의 반응에만 의존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을 계속해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외적인 반응보다는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진짜 모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의 말에 나연희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그는 항상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책임감 속에서도 자신을 찾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연희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럼, 유원우 씨가 생각하는 본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요? 어떤 모습이요?" 나연희는 조금씩 그의 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조심스레 물었다.


유원우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그걸 잘 모르겠어요. 팬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내가 진짜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모습이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게 '진짜 나'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찾는 과정이 너무 어렵죠."


그의 말에서 묘한 슬픔이 묻어났다. 나연희는 그가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외적으로 성공적인 밴드가 되었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유원우를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그가 겪고 있는 내면의 싸움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럼,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여전히 무대에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나요?" 나연희는 다시 물었다.


유원우는 깊은 숨을 쉬며 고백했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 팬들이 환호하고 대중의 반응이 좋을 때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진짜 '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들이 제 음악을 듣고 공감해 줄 때, 그때는 제가 존재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어요. 공연을 할 때만큼은 제가 정말 살아있는 것 같거든요. 그게 바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그의 답변은 여전히 진지했다. 나연희는 그가 무대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의존하는 것도 결국 그에게는 그것이 큰 힘이 되었기 때문임을 느꼈다. 그는 무대에서만큼은 자신을 잃지 않고 진짜 자신을 찾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원우 씨는 팬들에게 '진짜 나'를 어떻게 보여주고 싶나요?" 나연희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의 표정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제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도 실수하고 약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그게 팬들이 저를 더 잘 이해하고, 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연희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큰걸 깨달았다. 유원우는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모습을 팬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그가 바랐던 것은 무대에서의 완벽함이 아니라, 진정성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연희는 여전히 그와의 대화에서 느껴진 감동을 마음에 담았다. 유원우는 점점 더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녀는 그가 겪고 있는 감정과 갈등을 더욱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의 관계가 점차 더 깊어져가면서, 나연희는 직업적인 태도와 개인적인 감정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서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선명한 끌림, 호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