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곡) 이상해 정말 - 1415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나연희가 보낸 메일에 대한 답변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나연희 기자님. 답장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공식적인 기사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요청드린 거라, 꼭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면 충분해요. 일정에 맞춰 알려주세요. – 유원우 드림]
나연희는 그 메일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공식 기사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라니. 기자와 아티스트의 관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건 일인지, 아니면 사적인 만남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결국, 나연희는 무심한 척 답장을 보냈다.
[괜찮으시다면 회사 근처 카페에서 뵙죠. 편하게 이야기 나누면 될 것 같네요.]
그렇게 우연처럼, 아니 필연처럼, 그리고 운명처럼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다시 현재로-
나연희는 유원우가 왜 자신에게만 따로 인터뷰를 요청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가 보낸 메일에서 기자간담회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당시 현장에서 한 질문이 꽤나 뇌리에 남았던 건가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 이후 그는 인터뷰를 핑계로 계속해서 나연희와의 만남을 약속했다.
오늘도 인터뷰를 가장한 만남이 예정돼 있었다. 나연희는 노트북을 챙기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식적인 인터뷰라기엔 애매한 자리였다. 기사 하나를 위해 후속 인터뷰를 여러 번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처음엔 단순한 작업 과정이라 넘겼지만, 만남이 반복될수록 본인도 혼란스러워졌다.
그럴수록 나연희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괜한 의미 부여는 금물이다. 그냥 일만 성실히 하면 그만이야.’
카페에 도착했을 때, 유원우는 이미 구석진 자리에서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몇 번 만났다고 그새 편해졌는지 그녀를 보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기자님, 오늘은 커피 말고 뭐라도 좀 드시죠. 매번 빈속에 인터뷰하는 거, 너무 고된 거 아니에요?”
“아뇨, 전 괜찮아요.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 “매번 그렇게 말하면서 두 시간씩 얘기하다 가시잖아요.”
나연희는 말없이 노트북을 펼치며 그를 바라봤다. 사실, 인터뷰가 길어지는 건 유원우 때문이었다. 처음엔 앨범 이야기, 그다음은 밴드 근황, 그러고는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흘러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까. 아니, 오늘은 진짜로 짧게 끝내야 한다.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르네요.”
유원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늘 단정한 블라우스와 슬랙스 차림이 익숙했던 나연희가 오늘은 화사한 분홍색 셋업을 입고 있었다. 마치 전보다 한층 따뜻해진 계절처럼, 봄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눈치채고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좀 꿀꿀하더라고요. 이럴 땐 일부러 밝은 옷을 꺼내 입어요. 좋아하는 걸 입으면 하루가 조금 더 기분 좋아지거든요.”
유원우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확실히?”
“화사한 핑크빛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에요.”
예상치 못한 칭찬에 나연희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유원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럼 오늘 하루는 꽤 괜찮겠네요?”
나연희는 멋쩍게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시작된 세 번째 만남. 그녀는 오늘은 반드시 짧게 끝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유원우와 마주 앉은 순간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막상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문득 다른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최근 들어 많이 힘들어 보이세요.” 나연희가 말했다. “밴드 활동 외에도 개인적으로 뭔가 걱정거리가 있나요?”
유원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요즘 많이 힘들어요. 팬들의 기대도 크고, 그만큼 제 자신에 대한 부담도 커졌죠. 하지만 기자들은 그걸 알 리가 없잖아요. 그저 제가 대중 앞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걸요."
그의 목소리엔 분명히 고통이 묻어 있었다. 나연희는 그가 툭 털어놓은 본심에 마음이 흔들렸다. 기자로서 감정을 섞지 않으려 했지만, 유원우의 눈빛이 계속해서 그녀를 압도했다. 그가 이렇게 기자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그 질문이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다.
"그렇다면, 기자들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남아있나요?" 나연희가 다시 물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유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전히 그래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기삿거리를 찾으려 드는 사람들이니까요."
나연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 유원우는 늘 기자들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했고, 그런 점에서 나연희는 그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그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기자가 이런 말을 들을 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리고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 감정이 섞이지 않도록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기자들이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연희가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처럼, 대중 앞에 서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 심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유원우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숙이며 말없이 웃었다. "나 기자님은 조금 다른 기자 같아요. 기자님은 좀 다르게 보였어요. 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요."
그의 말에 나연희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가 말하는 ‘다른 기자’라는 표현이 조금 의아했지만, 동시에 그가 솔직하게 전하고 있는 무언가에 자신이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나연희는 자꾸만 유원우가 말한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기자 같아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기자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던 자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뿐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뵙고 싶네요. 다음 인터뷰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유원우가 물었다.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해요." 나연희가 대답했다. 그러나 내심 그녀도, 다음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그가 점점 더 궁금해졌고, 그의 진심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유원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나연희는 그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다른 기자’라고 느낀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마음이 흔들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