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최선을 다했어

열두 번째 질문, 최선을 다 한 순간에 대하여...

by 나작

가을 내내 쉬지 않고 열심히 글을 쓰고 마지막 장을 채운 조는 펜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외친다.


그래, 난 최선을 다했어! 이게 마음에 안 든다면 실 력을 더 쌓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There, I’ve done my best! If this don’t suit I shall have a wait till I can do better.

열두 번째 질문, 최선을 다한 순간에 대하여...


2016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나도 외쳤던 것 같다. "그래, 난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다음 말은 좀 달랐다.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어."였던 것이다. 라오스에서 나는 주로 NGO 단체에서 프로젝트 관리를 했다. 그게 라오스에서의 내 정체성이기도 했다. 국제개발협력 현장 활동가. 이젠 그 단어를 말하는 것조차 민망스럽고 부끄럽지만, 그 시절 나는 꽤나 진지했다.


돌아보면 너무 편협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스스로를 직업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곧 삶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 사람을 존중하는 일,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언제나 부끄럽다. 나는 전혀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는 적어도 세상이 더 나아지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상적인 가치와 원칙을 하나씩 세워나갔고, 삶에 적용하고 싶어 했다.


나는 내가 소속된 단체를 '회사'라고 칭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급여를 거의 받지 못했고, 그에 비해 무거운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일'이 아니라 '활동'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주변의 동료들이 6개월, 1년 만에 떠나가거나, 커리어를 쌓아 정부기관이나 국제기구의 직원이 되어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겐 '직업'이 아니라 '삶'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은 활동을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마을에 다녀온 후 빵빵한 에어컨 바람이 맞아주는 도심의 카페로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안도감에, 태국의 널찍한 쇼핑몰을 활보하면서 느껴지는 쾌적함과 즐거움에, 외국인들이 가득한 재즈바에 앉아 와인잔을 들고 느끼는 여유로움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곳의 사람들과 더 가까이 살지 못하는 것에,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지 못하는 것에, 더 많이 해줄 수 없는 것에 나를 탓했다. 내 역량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체에서 관심이 없더라도, 상사가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내가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년이 되던 해에,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느꼈다. NGO라는 곳도,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도, 믿고 따르던 선배들도 길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절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사실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느꼈으면서도, 결국은 진심이 빠진 채로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그때부터 내가 일하는 단체가 '회사'가 되었다. 나는 '워라밸'을 고민했고, 월급액수에 신경 쓰였고, 그제야 스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캄보디아에 파견되었을 때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동료들이 부담스러웠고, 마을보다는 더 편안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건 전혀 즐겁지 않은 경험이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건 최선의 결과를 냈다는 것과는 다르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다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나는 너무 성급하게 실패했다고 결론 내린 건 아닐까.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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