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기 전 가장 먼저 밀려오는 감각은, 어깨와 허리 부근의 뻐근한 근육통, 묵직한 다리의 부기, 헐거운 뼈마디의 덜그럭거림, 미세한 두통, 성가시기만 한 요의 같은 것들이다. 나에게 아침에 '일어난다'는 행위는 항상 '간신히'라는 부사를 달고 온다. 정신이 무의식에서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 후에도 한참을 뜸 들여 '간신히 일어나'면, 여전히 풀리지 않은 피로감에 또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 벌써 시곗바늘이 아홉 시를 넘어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오늘도 늦게 일어났구나, 또 한 번 자책하면서.
그것은 너무 오래된 '질병'이었다.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는. 학교에 다닐 때에도, 회사에 다닐 때에도 지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특히 회사에서의 지각은 내 능력과 성과로는 메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매일 죄진 사람처럼 어딘가 켕기는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의견을 말할 때마다 누군가 '지각하는 주제에'라고 비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십 분만 일찍 일어나지 그랬어!' 하며 나를 탓하다가, '근무시간 좀 유연하게 해 주면 안 되나?' 하며 회사를 탓하다가, '인류가 언제부터 9-6 근무를 하며 살았다고 다들 왜 이러고 사는 거야?!' 하며 세상을 탓하다가, 어쩔 수 없이 또 허겁지겁 일어나 뛰쳐나가야하는 것이다.
계약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해외파견이 주된 형태라, 계약직이 자연스러운 직종에서 일했던 것도, 어쩌면 출근을 3년 이상 지속할 수 없는 내 약점 때문이었다. 정규직은 능력과 별개로 꿈도 꾸지 못했다. 출근카드를 찍고, 엄격한 인사고과를 치러야 하는, 소위 좋은 직장을 수십 년 다니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취업을 할 때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에 앞서, 출퇴근이 얼마나 타이트 한가를 따져야했다.
"사회 부적응자들이나 저러고 사는 거지."
라오스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을 때, 본부의 한 임원이 파견 직원들을 싸잡아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말을 할 자격 또한 없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왜 이 일을 선택하셨어요?"라는 직원의 물음에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대학졸업하고 부모님한테 용돈이나 받으면서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밌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아는 기관에 취업시켜 버렸어요." 그는 한 복지기관에서 최연소 초고속 승진 타이틀을 달았고, 내가 일하는 기관의 국장으로 부임해 온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나는 분노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부적응자'가 맞았다. 그런 '사회 적응자'와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1년 이상 지속된 출퇴근이 너무 힘들었다.
마지막 일을 그만둔 후, 나의 고요한 시간은 밤 10시 이후에 찾아왔다. 아이가 잠이 들면, 슬며시 이불을 걷고 나와, 다이어리를 펴고 나의 다짐을 꾹꾹 눌러 적는다. 낮 동안 펼치지 못한 책을 읽고, 새벽이 될 때까지 글을 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늦은 아침에 묵직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오래된 '질병'을 바로잡으려, 나는 며칠에 걸쳐서 잠드는 시간을 조절했다. 잠이 부족하지 않게, 열심히 잤다. 그리고 이제야 드디어 조금은 덜 무겁게,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다시 이른 아침을 맞이한다. 나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오늘의 다짐을 적는다. 펜을 쥔 손 위로 햇빛 한 줌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나의 아침을 꽉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