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같은 언어를 믿었다

서로의 언어에 머물렀던 시간

by 므므

처음 나는,
내가 너보다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네 모습이
참 좋았어.
잡초였던 나에게는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나는
온실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었어.

그래서

너의 말,

너의 언어라는 세계 안으로
나를 밀어 넣으려 했지.


거칠고 메마른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서는
작은 잎사귀라도 너의 온기와 햇살을 향해
안간힘을 다해 뻗으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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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닿고 싶었고,
네가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싶었어.
너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나는 그 온실의 따스함,
네 언어로 피워낸 세계를 사랑했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순수한 네가 옳다고 믿었어.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너는 내 말 속의 모순을 빠르게 찾아냈고,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너만의 언어로 다시 쌓아 올렸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조심스레 꺼낼 때도,
너는 언제나
"그럴 수 있지"라고 말했지.


그리고,
나의 말은
언제나 너의 언어로 다시 편집되었어.


나는 그렇게 다시 빚어진 너의 언어를 사랑했어.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았어.
그 말 속에

“나는 그렇진 않아”,
“그건 네 생각이지”,
“나는 아니야”라는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그래도,
나는 너의 "그럴 수 있지"를 좋아했어.


사실 내가 정말 바랐던 건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지 못 했어!’라는
조금 더 놀라고,
조금 더 반짝이는 눈빛이었지만.


너의 “그럴 수 있지”는,
'나는 아니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라는

단단하고 조용한 선 긋기였고
나는
애써 모른 척했어.


그래도
우리가 같은 말,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
우리는 참 행복했어.


내가 쓸데없는 농담을 던지면
너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편의점 앞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두고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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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소한 걱정에 안절부절하고 있으면,
"심호흡부터 하자"며
내 손을 잡아주었지.


화가 나서
"오지 마! 이번 주도 오지 말고, 다음 주도 오지 마! 한 달 후에 봐!"
억지로 내뱉었던 말도,
너는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그날 밤 바로 찾아와 주었어.


“일주일 동안 전화하지 마”라고 해놓고
이틀 만에 걸려온 너의 전화에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웃었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서로 같은 언어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어.


하지만,

기분이 울적하다고 털어놓은 나의 말을

우리는 같은 언어로 듣지 않았어.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너만의 언어로 해석하기 시작했지.


"나는 울적할 때 혼자 있는 게 좋으니까,
너도 혼자가 필요한 거겠지" —
너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나의 울적과
너의 울적은 달랐어.


나에게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어주는 온기가 필요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서로의 감정, 기분, 상황을

각자의 언어로만 듣기 시작했어.


"힘들어"라는 말이
"도와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버려 둬'로 들렸고,


"괜찮아"라는 말이

"정말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신경 쓰지 마, 그냥 두고 가줘'로 들렸던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리는 다른 말, 다른 언어 속으로
서서히 흘러가듯 멀어져 갔고,
서로를 이어주던 같은 언어의 기억마저
조용히 흘려보냈어.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없이
서로의 삶에서 사라져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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