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지 않을 이야기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목이 메어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by 므므

그가 충분히 내 곁에 있던 날들의 기록


지금 시간은, 오후 네 시.
오늘의 첫 끼.
현미밥과 육개장은 그대로 식어버렸다.


목이 메었다.
국에 말은 밥알조차,

목을 넘기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서른여섯 살이 되도록 직업 없이,

백수였던 너.

알바를 전전하던 너.
엄마의 잔심부름을 하며
그 용돈으로 나와 데이트를 했던 너.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고민에

기숙사가 제공되는 공장에 취직했던 너.


직업이 없어도,

직장이 없어도,
기숙사에서 살아도,
차가 없어도,
집이 없어도,
모아둔 돈이 없어도,
책임감이 무엇인지 몰랐어도,
미래를 준비하는 법을 몰랐어도,
세상 물정을 몰랐어도,
여전히 엄마의 그늘 아래 있어도—


밥을 먹을 때 핸드폰 대신 나를 바라봤고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어줬고
내 연락을 한 번이라도 놓치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너.


내가 하는 걸 함께 해보려 애썼고,
날 웃게 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했지.

나의 잦은 지적에도
단 한 번도 발끈하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향,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로
조심스레 너를 꾸미려 했던 너.


한 달에 두 번만 만나도,
여행을 가지 않아도,
데이트 계획을 자주 세우지 않아도,
내가 울면 함께 울었고
내가 웃으면 함께 웃었어.


나는 그냥,
이것이면 충분했다.

정말, 이렇게만 있어주면 된다고 했어.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돈을 더 벌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회가 말하는 ‘미래’ 같은 거
우리는 굳이 꾸리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만 더
내가 세상과 맞설 힘이 생길 때까지
강해질 수 있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그때의 너는

김밥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밥 먹고 출근해”라며
추운 아침 공기에 코끝이 빨개진 채
해맑게 웃고 있었지.

나는 그 모습 그대로의 너를
사랑했어.


혼자 말했지.
'어떻게 그런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나는 그 모습을 사랑했다고.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나 그냥 내꺼 김밥 먹고 싶어서 산 건데?”

“가는 길에 네 것도 그냥 산 거야.”

너는 어느샌가

그건 ‘널 위해 한 게 아니’라고,
굳이 짚어 말하곤 했지.


그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말을 한 그날부터였을까.


너는 점점
세상이 정한 틀에
너를 맞추려 했어.


세 해 전까지는
그 틀 바깥에서 살아가던 네가.


그리고

그 안에는,
나를 놓아둘 자리는 없었지.


어느 순간,
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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