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더미 만들기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스토리 보드를 만드셨나요? 이번엔 그것을 한 번 더 다듬어 줄 거예요. 나무로 물건을 만들 때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포질 하잖아요. 그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스토리 보드로 만든 A6종이를 복사하셔도 좋고 그것을 그대로 쓰셔도 상관없고요. 그 종이를 책처럼 붙여보는 거예요. 등과 등을 붙이면 되겠지요. 그러면 이런 형태가 돼요.
아주 작은 미니 더미 북이 되는 거지요. 이 과정이 왜 필요하냐 하면은요. 그림책이 책이기 때문이에요. 책은 물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종이를 넘겨야 다른 장면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미니 북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버스 안이나 커피를 마시다가도 계속 넘겨 보세요.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어색한 곳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단계예요.
상황이 허락한다면 글 자리에 글도 다 넣는 걸 권해드려요. 상황이 더 허락한다면 원래 크기로 뽑아서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줘 보세요. 작가들은 한 작품에 몇 달씩 빠져지내기도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눈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답니다.
주의할 점은 책이라곤 중고등학교 다닐 때보던 교과서만 존재하는 줄 아는 사람이라던가, 그림이 그려진 책의 존재를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은 예외예요. 제가 경험상 애기 엄마나 어린이집 종사자 혹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일부 성인이 잘 보더라고요. 그림책에는 그것을 읽는 보이지 않는 법칙이 있어요. 아이들이 글자는 몰라도 말은 하듯, 이런 분들도 그림책을 만들 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아세요.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보여 줬다가 가슴에 상처만 남을 수 있으니 잘 골라서 보여주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느 정도 완성된 보드를 편집부와 상의 후 수정하는 과정을 2-3차례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판형과 이미지 컷 (채색 샘플)이 나오기도 해요. 이미지 컷 image cut이란 그림책의 전반 느낌, 분위기, 기법, 캐릭터 등 그 작품의 중요한 점이 한눈에 드러나는 장면이 이미지 컷이랍니다. 저는 스토리 보드만큼이나 집중하고 신경 써서 그리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그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작업실 책상 맨 위에 걸어 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