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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22. 2018

혼자 견뎌야하지만 혼자만의 슬픔이란 없다

강릉단편 #5



버스 창밖으로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승객도 반 이상으로 줄어있었다. 엔진음 소리와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고요한 침묵을 깨고 있었다. 소진은 가방 속에서 카페에서 챙겨온 티슈를 발견했다. 카페&게스트하우스 달이라고 쓰인 티슈를 반으로 접어 차가워진 코끝을 닦았다. 삐 신호음과 함께 버스 뒷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내렸다. 안내방송에 귀 기울이던 소진은 막 내릴 역을 지나쳤다. 두 발이 버스에 묶인 듯 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오늘 게스트하우스에 빈 방이 있나요?”

소진은 버스에서 내려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요염한 실루엣의 달이 하늘에 걸린 채 소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 대로를 사이에 둔 소나무 숲 속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모았다 밀려들고, 부서지는 파도 소리, 모래가 마를 새 없이 젖어드는 그 반복함. 소진은 의식적으로 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들었다. 

무심한 통화연결음이 이어지고 안내멘트로 바뀌었다. 첫 음성에 소진은 통화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다음 순서인듯 연락처의 번호를 삭제했다. 마침 그녀가 통화를 끝내길 기다렸던 곳에서 전화가 왔다. 

“잘 오고 계세요? 걸어오시는 중이죠? 헤매실까봐 전화했어요.”

소진은 마중 나오겠다는 목소리에 짐짓 안심하며, 다시 숲길을 걸어 나갔다. 어둠 속에서 더욱 또렷이 들리는 파도 소리, 강릉에서 나고 자란 허난설헌도 귓가에 쟁쟁했을 소리. 그 남자는 어땠을까? 부유한 집안의 재능 있는 딸을 아내로 맞이하며 부담이 컸을까? 아내와 늘 비교 당하며 작아지는 기분이었을까? 자식에 이어 젊디젊은 아내를 보낸, 어쩌면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을까? 끝내 아내의 품에 돌아오지 않은 채 전장에서 죽은 그 남자. 돌아오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때라고 여겼을까? 

사람은 누구나 슬픔의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것 같다. 감당할 수 없이 커져버린 주머니 때문에 버거운 삶을 살 때도 있지만 언제고 이 주머니 작아지거나, 낡거나,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피슝 구멍이 뚫리기도 하는 것이다. 혼자 견뎌야하지만 혼자만의 슬픔이란 없다. 

다시 소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소진 가까이에서 들렸다. 소진은 뛸 듯이 걸어나갔다.  

“걸어오는데 힘들었죠? 무섭진 않았어요?”

낮 동안 내린 비로 폭신폭신해진 숲길에서 소진은 여자와 재회했다. 

“좋았어요.”

소진은 말갛게 웃으며 대답했다. 머리 위로 달은 비추고, 파도소리는 짐짓 성난 것처럼 해변을 덮고 물러났다. 강릉에 또 오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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