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의 사전적 정의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것에 서툴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말이래. 길-치면 길을 잘 못 찾는 사람, 기계-치면 기계를 잘 못 다루는 사람, 몸-치면 몸을 잘 못 쓰는 사람 등이 되겠다. 너는 어떤 치니? 설마 눈치? 눈치의 ‘치’는 저 치와 상관이 없더라고. ‘–치’는 한자어였어. 나는 몰랐는데 넌 혹시 알고 있었니? ‘치 = 癡 = 어리석다, 어리다. 미련하다’를 뜻해. 기계 좀 모른다고 어리석다니 기분이 좀 상하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둔한 건 사실이니까 그러라 그래. 나의 대표적인 치는 길치와 기계치야. 살면서 크게 불편한 건 없었어. 아닌가? 있나? 젊은 날 어학연수를 갔을 때 한 2주일간 집을 못 찾았던 적이 있었어. 해를 보고 나와 달을 보고 들어가는 그런 날이 계속 되어서 잘 맞던 청바지 허리에 주먹이 쏙 들어갈 정도로 살 이 빠져더랬어. 그런데 내 살들이 많이 놀랬었나봐. 아주 빠른 속도로, 친구들까지 불러와 내게 돌아오더라고. 그러니 손해랄 건… 없는 거지? 지금은 그때보다 길치에서 벗어났어.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길을 다녔으니 낯선 길에서 헤맬 일이 적어진 거지. 이건 좀 유쾌하지 않다. 살면서 제대로 길치가 될 그런 낯선 곳에 또 머물게 되면 좋겠어.
두 번째는 기계치인데, 이건 정말 해결 방법이 없더라. 기계에 워낙 관심이 안 생기는 걸. 당연히 얼리어답터에도 거리가 멀고, 지금 쓰는 핸드폰도 늘 쓰던 기종으로 시리즈만 다른 거야. 하나에 익숙해지면 그 하나가 닳을 때까지, 고장 날 때까지 쓰는 사람이 나야. 그렇지만 나도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을 따르긴 해.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MP3에 취향의 음악 등을 다운받고 행복해했는데 이제는 언제 MP3를 사용했는지 기억도 안 나. 유선 이어폰도 그래. 종종 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새로운 핸드폰에는 구멍도 안 맞네. C타입인지, D타입인지 꼭 바꿔야만 했나요?! 이래저래 빠른 속도로 구형이 된 그들 대신 필수품이 된 건 블루투스 이어폰. 지금 쓰는 이어폰은 두 번째인데 나는 부족한 걸 모르고 잘 썼거든. 근데 음악을 못지 않게 좋아하는 내 친구는 참 부족해 보였나봐. 나에게 정성껏 고른 이어폰을 선물하면서 의기양양했지. 선물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아주 고맙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기계에 대해 워낙 관심이 없으니 ‘너무 좋아!’라는 감정은 안 생기더라고. 그러다 어제 퇴근길에 귓가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무심코 듣는데 온 몸으로 좋은 거야. 주변 잡음은 사라지고 두 귀에 낮은 노랫말과 악기들이 원래 내고자 했던 소리가 이런 거라며 알려주듯이 하나하나 다 들리고 조화로워서 가슴이 묵직해지더라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역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한 곡을 끝까지 들었어. 이런 거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발 빠르게 좋은 기계를 쓰려고 하는 거구나. 친구의 의기양양함도 이해가 되고, 점프점프하며 좋아하지 못한 나의 모습도 미안해졌어.
아, 감동이야. 이거 하나로 기계치가 단번에 발전하진 않겠지만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이나,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알겠어. 그리고 내가 알려하지 않은 어떤 것들이 내 삶의 질을 이렇게 끌어올려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워. 나 최근에는 내 의지로 다이슨 에어랩을 샀어. 나름 사회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미니 고데기 한 번 내 돈 주고 산 적이 없거든. 그런 내가 다이슨 에어랩을 사다니, 이건 놀라운 일이야. 이건 기계치인 나도 할 수 있겠더라고. 그냥 머리카락에 갖다 대면 알아서 컬이 말리는 건데…. 바람에 머리만 나부끼더라? ‘괜히 샀구나’ 침울했지. 그래도 다들 좋다는 데 이유가 있으리요, 꼼꼼히 사용자들의 후기와 영상을 찾아봤어. 그리고 어제부터 드디어 기술을 터득했다는 말씀! 말려진다, 말려져. 이렇게 기계치 탈출인가요? 조만간 세탁기도 고치나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동안 관심 없던 분야에 시선을 돌리는 노력은 해봐야겠어. 부족해야 채울 수 있으니 우리 조금은 ‘–치’여도 괜찮겠지? 길을 헤매다 목적지를 찾는 기쁨,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기쁨도 아주 크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