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아래의 여름은 연꽃의 계절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마도, 벌써, 진흙의 연못 속에서 홍련과 백련의 연꽃은 얼굴을 내밀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연꽃공원을 찾으면 꽃이 얼마큼 피어있을지 설레곤 했는데, 올해는 초연한 마음이 든다.
그대로 가만히 연꽃들의 무리를 보니, 한쪽에 꽃은 피어있지 않고 싱그러운 초록의 연잎들로 하늘이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 것만 같은 연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빛... 싱그럽다!
커다란 연잎들은
태양을 담고,
구름을 담고,
스치는 바람을 담고,
하늘의 빗물을 담고,
손잡고 나온 연인들의 사랑을 담고,
한평생 함께 의지하며 살아온 노부부의 인생을 담고, 누군가의 넋두리를 담고도 더 담을 것이 있는 초록의 바다 같다.
그동안은 꽃만을 보느라 보이지 않던 연잎의 새순도 눈에 들어왔다. 양쪽 잎을 멍석말이처럼 돌돌 말고 있는 새순은 갓 태어난 아기의 꼭 쥐고 펴지 않는 주먹과 같은 모습이다. 돌 돌 말려 있는 연잎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었다. 새 순의 모습에서 움켜쥐고 웅크리고 살아온 나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했던 젊은 시절!
겸손하지 않았음을
우월감을 갖고 살았음을
남보다 내가 먼저였음을
무례한 적도 있지 않았을까!
새 순은 잠시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들숨과 날숨으로 숨을 고르고 가슴을 펴고 하늘을 보니, 나이 들어감의 여유가, 시간이, 자유가, 자연의 풍요로움이, 오롯이 내 두 손안에 담겨 있음이 느껴졌다.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주어진 삶의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살아갈 날이 짧은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연꽃은 살아가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바로 눈앞의 홍련이 노래하는 듯 오므리고 있던 꽃잎을 열었다. 어제 온종일 피었던 꽃은 해가 지면 처음의 봉오리가 되어 새로운 시작을 기다린다. 밤을 새운 홍련이 하루를 시작하며 한 잎, 두 잎 가슴을 열면, 친구 꿀벌들은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날아와 모여든다. 하룻밤 헤어져 있었는데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같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한 송이의 홍련이 활짝 피는 시간은 무려 한 시간이나 넘었다. 이제야 나는 알았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갖듯,
연꽃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 제각기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피어나는 기다림의 꽃이라는 것을!
연꽃의 우아함!
찬란함!
숭고함!
초연함!
그리고 겸손함!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며칠이 지난 후 기다리던 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빗방울 맺힌 연꽃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머리 위엔 우산꽃이 피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였다.
그리고 송골송골 맺힌 빗방울 속의 연꽃을 보니
각자 자신의 꽃을 피어내 어느 날은 해를 마주하고, 또 어느 날은 비를 맞으며 또 다른 아침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개구리도 연잎 우산 밑으로 잠시 비를 피하고, 잠깐 비가 멈춘 사이에 실잠자리는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연잎은 담을 만큼의 빗물을 담고는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