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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Nov 04. 2021

멜랑꼴리 구름.

살아온 날의 단상


  살면서 억울한 일이 몇 번인가 있었다. 지금 2021년이니 44년전 일이다. 생각나는 것 하나로 나는 결혼 초 군인이었던 남편 따라 포항에서 신혼생활을 할 때였다. 포항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이었고 생소한 곳으로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아침 먹고 죽도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다. 시장은 그날따라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놓인 한 무더기의  호박과 가지 등의 가격을 묻고 호박과 가지를 고르기 전에 먼저 돈을 지불했다. 나는 먼저 돈을 내는 습관이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내 돈을 받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의 물건을 담아주었다. 나는 아주머니께서 내 돈을 받았으니 내게 와서 골라 놓은 호박과 가지 등을 봉투에 담아주기를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또 담아 주고 그리고 내게로 왔다. 내가 봉투에 담아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께서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좀 전에 돈을 냈다고 하자, 아주머니께서는 큰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 아니, 뭐라카노?돈도 내지 않고 돈을 냈다고? 봐라, 봐라. 내 언제 받았노? 누구를 속이려 카나?" 아주머니는 경상도 사투리 큰 목소리로 계속 떠들어 댔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아까 내 돈을 받고 옆으로 가셨잖아요." 하니 그 아주머니는 허리에 차고 있던 앞치마 같은 전대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이며 "새댁 돈이라고 표시해 놨나? 어딨나? 찾아봐라?" 졸지에 몇 푼 안 되는 호박과 가지의 돈을 안 낸  주인을 속인 사기꾼이 되어버렸다.


  나는 너무 억울했지만 그 목소리 큰 시장 아주머니 목소리에 짓눌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옆 가게 아저씨의 눈빛이 내게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내 말을 믿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돈에 내 것이라는 표시도 없었고, 억울해도 대꾸도 못하고, 시장도 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억울함을 밝히지 못하는 서울 새내기 주부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눈물도 났다. 그리고 그 이후는 물건 살 때 먼저 돈을 내지 않고 돈을 내고는  꼭 "돈 냈어요."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주 작은 일이었으나

이 억울함과 모멸감은 오래갔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일이 가끔 생각나면  "내가 힘들어 다른 사람을 품어주지 못했을 때가 있었던 것처럼, 그분도 그때의 삶이  아주 힘든 상황이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멜랑꼴리 구름' 사진:빈창숙


조국의 시간


하늘의 구름은 '멜랑꼴리' 했다.

마치 오늘 나처럼.


구름은

이쪽 하늘에서도 저쪽 하늘에서도

'멜랑꼴리'한 색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러나 서로 말은 하지 않았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는 것으로

구름과 나는 하나였다.


잠시 환해지는가 싶더니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를 덮칠 때의 구름처럼

짙은 회색으로 변해갔다.


천둥과 번개와 비를 동반했다.


나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숨도 가빠졌다.

그리고 머리와 옷은 젖기 시작했다.

아직 집에 가려면 멀었는데...


잠시 다리 밑에서 기다렸다.

순식간에 휘몰아친 하늘의 분노는

누군가의 눈물로 흘러내렸다.


그 시간은 조국의 시간이었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글을 쓴

한 사람.


                 '멜랑꼴리 구름' 사진: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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