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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Nov 19. 2021

들숨과 날숨으로

살아온 날의  단상

들숨과 날숨으로


나는 몇 달을 온종일 집에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나의 모든 활동이 제한됐다.


나는 추었고 세계도 멈추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 쓰고

지구도 마스크 쓰고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 아닌 동물들의 생활은 변함없었으나

사람만이 제약을 받았다.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만이!


나는 저녁마다 혼자 

평균 12000보 정도를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별난  삶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 보았다.


진정, 

나는 누구인가?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나의 고유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고 있나?


또한,

나는 어떤 면이 부족했나?

리고 무엇을 참지 못했나?

무엇을 억울해했나?


나는,

무엇에 감사했는가!

무엇에 분노했는가!

무엇에 슬퍼했는가!

무엇을 후회했는가!

무엇을 용서 못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랑했는가!

어떻게 나누었는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70년의 생이 마치 2시간의

걸음처럼, 영화처럼 지나갔다.

그러다, 한 장면 속에서 나는 멈추었다.


잊은 게 아니라 잊히기를 기다린 시간.

그러나 아직 잊히 않은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은 용서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나는 잠시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2021년에

            '어두움이 구름 되어' 사진: 빈창숙


어두움


어두움이 훅하고 내게 들어왔다.

허락도 받지 않고

내쫓으려 머리를 설레설레 흔드니

어두움은 더 커지고

깊숙이 내 안에 자리 잡고 누워있다.


다 잊은 거라 생각했는데

앙금의 찌꺼기들은

세찬 바다처럼 일렁거렸다.


설거지 못해 산만큼 쌓아 놓은 그릇의 울부짖음처럼.


버리지 못한 음식 잔해물의 아우성처럼.


개수대의 끈적거리는 비웃음처럼.


산발한 머리처럼.


엉켜서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어두움은,

어두움은 연못에서 보았던

한 떼의 올챙이들처럼

몰려왔으며,

꿈틀거렸으며,

저들끼리 똘똘 뭉쳐있었다.

흩어지면 죽을까 봐.


그렇게

어두움은 사막의 회오리바람이

요동치며 모래기둥 만들어

이리저리 방황하다 온 것처럼

훅 내게로 온 것이다.


그러면 내 가슴에 바위 하나 남고

나는 없어지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어두움은 하찮은 것이다

치부해 버리면,

바위는 사라지고

내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내가.


다시 들어올까 빗장 걸어 잠그려니

내 가장 깊은 심연 속으로

모든 것을 헤집고 숨어버렸다.


어두움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잠재우자.

나가지 않을 어두움이라면

긴 잠이라도 재우자.


들숨과 날숨이 바람 되어

하늘꽃 될 때까지...


2021년에

                  '들숨과 날숨의 구름' 사진:빈창숙


                '하늘 꽃 될 때까지' 사진: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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