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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Oct 18. 2021

프로테아

보타니컬 아트 그리고 시

눈부시게 빛나서 슬픈 날에


4월의 태양은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화사했다.


햇살은 봄의 연초록들을

야광색으로 만들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맴도는 먼지들을 세어보게 했다.


보석처럼

눈부시게 빛나서 슬픈 나날들


빨간 꽃이 울고

친구는 숨이 멎었다.


살아내겠다고  하던 그 봄

눈부시게 꽃이 피어나는 그 봄에.


퉁퉁 부은 발 씻겨 보내며

하늘을 보았다.


돌아오니 그림 한 장

그대로 있는데


친구는 햇살에 맴도는

먼지가 되어

하늘로 가고 없었다.


눈이 부셔 슬픈 봄날에


                           프로테아 by 빈창숙


2016년 봄


봄에 친구는 "피곤하다." 했다.

난 "또 과로했구나!" 하며 쉬라고만했다.

언제나 씩씩했던 친구였기에.


그리고 그 봄,

난 공모전에 출품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화 프로테아였다.


얼마 후 아프다던 친구가 병원에 입원을 했.

나는 놀랐지만 전화 속의 친구는 씩씩했다.

"별게 아니야, 그냥 쉬고 싶어서."


나는 모든 일 뒤로하고 입원한 친구를 보러 갔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친구는 정말 "괜찮아." 했다.

"어디가 안좋은거래?병명이 나왔어?" 라는 나의 말에도

"잘 모르겠어. 아직 특별하게 나온 게 없어.

일도 좀 쉬고, 쉬면 괜찮을거야." 라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도 특별한 조치가 없는 듯 하니 금방 퇴원할거라고 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이 털컥 내려앉고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나는 친구가 있는 병원까지 기차 타고, 버스 타고 3시간이나 달려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아무 때나 면회가 안 되기에 면회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친구는 중환자실에 누워 주렁주렁 링거병을 달고 있었다. 나를 보며 "괜찮을 거야." 하며 죽을 반 그릇 먹었다.

조금은 안심을 했다. 무엇이든 먹으면 되니까.

그러나 나는 불안함을 없애지 못했다.

친구의 얼굴과 몸은 푸석푸석 부어있었다.

손톱도 거무스름했다.

발톱도 거무스름했다.


병명을 물으니 희한했다.

음 들어 보는 긴 병명이었지만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금방 다시 게." 하고는 난 올라가지 못했다.

공모전 그림 그리느라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가슴 한켠은

친구의 부은 얼굴이 남아있었다.


"그림 끝내 놓고 금방 올라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이 안 좋으니 살아있을 때 얼굴 보라고.

갑자기 머릿속은 텅 비었고 그 길로  차를 몰았다.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지금 숨이 멈추었어요." 친구 남편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오후 3시였다.

그렇게 친구는 숨이 멎었다.


아버지 죽음 이후 두 번째로 내 가슴이 무너졌다.


친구는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친구의 죽음 앞에

염 봉사를 해본 경험으로 친구의 발만 씻겨보내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친구의 퉁퉁 부은 두 발을 씻겨 보냈다.


"괜찮을꺼야."하던 친구는

그렇게 하늘로 올라갔다.


눈이 부셔 슬픈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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