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는 겨
남편 모임에 따라갔다. 자격은 대리운전기사.
근 삼십 오 년쯤 되어가는, 한 달에 한번 만나는 고향친구들의 만남이다. 멤버가 열명이라 한 달에 한 명씩 식사비를 내고 일 년에 두 번은 1박 2일 술여행을 간다(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11월은 고정으로 남편이 밥값을 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모임에 나오는 인원이 어마어마했었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모두들 참여를 했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코로나가 지나가고 하면서 이제는 남자들만 만나는 모임에 오랜만에 내가 참석을 하게 된 것이다. 전국으로 흩어져 있어서 모두 모이지는 못했고 나까지 여섯 명이었다.
가끔은 이들을 보면 지구인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열명 중 두 명은 아직 총각이고, 한 명은 상처를 했으며, 한 명은 재혼남이다. 한 명은 쌍둥이의 아빠이고, 한 명은 외동을 두었다. 여러모로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이 지구인을 통계적으로 나누는 표본 같은 느낌이 든다. 어쨌든,
겁나게 반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인사를 대충 나누고 술을 마신다. 그렇게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옛날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한 명이 남편에게 심각하게 말을 건넨다.
너, 솔직히 말해봐. 요즘 맘고생 좀 하지?
첨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어느 때보다도 얼굴이 좋은 남편을 보고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이 말뜻은 충청도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다. 이 질문을 직역하자면 '너의 아내가 전보다 많이 예뻐졌네.' 이런 뜻이다. 바람난 거 아니냐 뭐 이런 걸 이 따위로 돌려 말한다. 그러고는 다들 와하하핫 웃는다. 예~ 예뻐졌다니 감사할밖에.
충청도 사람들은 직설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그 직설적이지 못해 둘러둘러 하는 말이 몹시도 직설적이다. 언젠가의 여름날 자두를 사던 기억이 떠오른다.
뒤적뒤적 자두를 고르던 아줌마가
“아저씨, 이 자두 무슨 맛이에요?”
“참, 나. 자두가 자두 맛이지 무슨 맛이 것어. 어이가 없네에. 별 걸 다 물어어.”
차마 내가 묻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아주머니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나까지 무안해지는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아주머니는 그 퉁명스러움에 굴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아저씨, 이 자두 달아요?”
“아니, 이 아줌씨 보게. 단 거 먹고 싶으믄 집에 가서 설탕 퍼먹어어. 왜 여기서 단 걸 찾는댜아.”
단거 먹고 싶으믄 집에 가서 설탕 퍼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