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든든 몸 든든
지난 <3,6,9,12 모임>에 나갔다가 친구들에게 집중 포화를 맞았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나보고 미쳤냐고 했다. 하루에 세끼를 만들어서 남편에게 주다니 정신이 나갔냐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는 거다. 나 먹으려 하는 밥이다. 그리고 나는 식구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이 재미있다. 물론 가끔 매일 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짜증 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영역이다. 남편이 생활비를 꼬박꼬박 주는데 밥을 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 두끼 해주던 밥을 백수남편을 둔 죄로 반백수인 내가 세끼를 꼬박 만들고 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으면서 하루에 한 끼 해주는 것도 짜증 난다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그 친구는 조직생활을 안 해봐서 모를 것이다. 기나긴 회의에 영혼이 털리고 거래처에서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고, 그저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손을 비벼야만 살아남는 야생의 전쟁터에서 집밥처럼 든든한 지원군이 없을 것이다. 나도 아침밥을 먹어야 그나마 힘을 내서 돈을 벌러 나가는 거다. 또, 지금 백수라고해서 배가 고프지 않을리가 없다. 사실 일이 없을 때 더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나는 매끼 메뉴가 겹치지 않게 신경쓰면서 밥을 한다.
친구들이 말하길, 남편의 밥이라는 것은 아침은 당연히 안 주는 거고, 점심은 회사에서 알아서 먹고, 저녁은 되도록 먹고 오면 좋은 것이란다. 어떻게 매일 세끼를 해 먹느냐며 난리다. 당연하게 밥을 주지 않았더니 여러 종류의 냉동된 밥을 사 와서 아침에 데워 먹더란다. 다 알아서 살아가니까 그냥 두란다. 그게 가족일까.
나는 오늘도 아침을 차렸다. 우리들의 아침은 엊저녁에 냄비밥을 해 먹고 만든 누룽지를 끓인 밥이다. 맛이 있거나 없거나 그냥 무심히 먹는다.
산 것은 명란젓뿐이다. 내가 버릇을 잘못 들여서 내가 만든 거라야 먹는 남편님 덕분에 매일 반찬을 만든다. 뭐, 나도 좋다.
그나저나 남편은 왜 혼자 밥을 먹을 때 있는 반찬을 못 찾아서는 라면을 끓여 먹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