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부엌에 가서 ‘사라’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했더니 '사라가 사라지'라고 했고 동네 아줌마들과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중이어서 더 묻지 못하고 부엌에 가서 이것저것 들추다 아무거나 들고 들어갔다. 무엇을 들고 갔는지 생각은 안 나고 ‘사라’만 기억에 남았다. ‘사라’는 ‘접시’였다.
초등 체육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교실에 가서 ‘양동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근엄하신 선생님의 명령에 똑똑한 부반장인 내가 그게 뭐냐고 물을 수 없어서 교실에 들어갔다. 전에도 나에게 과학실에 가서 샬레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과학실 진열대를 들여다보다가 샬레라는 이름과 가장 어울리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들고 간 것이 바로 샬레 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실 안을 아무리 봐도 ‘양동이’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다가 대아를 들고 갔다.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게 세숫대야이지 양동이냐’했다. 반친구들이 와하하하 웃어댔다. 몹시 부끄러웠다. 중학교에 가서 양동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빠께스’인 것을 영어시간에 농구의 스펠링을 배우며 알게 되었다.
그건 모두 일본어의 잔재였다.
반장언니가 ‘깍지!'하고 소리쳤다. 나에게 빨리 가져오란다.내가 어벙벙해서 서 있었더니 옆에 있던 영양사님이 ‘종재기, 종재기!!“하고 소리쳤다. 그게 무엇인가. 깍지는 무엇이고 종재기가 뭐지? 다들 옆에서 깍지, 깍지 하고 빨리 가져다주라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나는 멍청이처럼 밥그릇을 들었다 놨다 했다. 다른 언니가 얼른 종지만 한 반찬그릇을 반장언니에게 갖다 주었다. 아니 표준말이 있는데 칵지며 종재기가 뭣이여. 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똑똑하고 젊다고 칭찬받던 나는 바로 멍충이가 되었다.
입사하고 며칠 되지 않아서 갑자기 박원장 님 식사하셨는지 영양사님이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수술실에서는 식사하러 왔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앞으로 식사할 사람이 몇 명이나 남았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오늘 몇 명이나 식사했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아니, 질문을 하려면 알려주고 나서 물었으면 좋겠다. 원장님이 몇 분이시고, 이렇게 생긴 분은 박, 이렇게 생긴 분은 최, 이렇게 생긴 분은 이원장님이라고, 식사하는 사람들의 옷 색을 보면 파란색은 수술팀, 핑크색은 병동, 뭐 이런 식으로 알려나 주고 물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어떻게 몇 명이 밥을 먹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래도 몇 명이 밥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고 싶어서 식판이 몇 개 나왔나 하나둘 세고 있는데 그걸 세고 있다고 한소리 들었다. 그럼 어쩔.
며칠이 지나서야 원래 식판의 수와 중간에 다시 올려놓는 수를 합하고, 나중에 남는 식판을 수를 따져서 하루 직원 식사인원을 파악한다는 것을 묻고 물어서야 알 수 있었다. 청소니 뭐니 돌아가면서 지청구를 할 때는 열심이더니 왜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고 답만 찾으라고 나무라는지. 그러나 나는 이제 종재기가 뭔지도 알고 오늘 인원이 몇 명이 왔는지 안다.
그러다 문득 화가 나는 거다. 엄마도 선생님도 언니들도 그게 뭔지 알려는 주고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다가, 까짓껏 대학에 다시 들어가 영양사나 될까 보다 하며 툴툴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