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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Dec 10. 2022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

누가 나를 지켜주나

중학교 1학년 때이다. 우리는 모두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뛰어 오셨다. 모두들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씀하셨다.


  '그 놈들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어!' 


우리들은 우르르 뛰어나가 버스를 탔다. 우리 집까지는 버스를 타고도 사오십분은 가야 하는 거리였다. 선생님의 그 말이 전쟁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두려에 휩싸여 집으로 가는 내내 어두운 상상 속을 허우적거렸다. 우리가 탔던 버스가 폭격을 맞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가족들을 만나 오열하며 끌어안고.. 아니면 내가 죽거나... 죽더라도 가족과 함께 였음 싶었다. 제발 집에 도착할 때까지 폭격은 안된다 주문을 외며 벌벌 떨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빠는 동네 어른들과 고스톱을 치며 놀고 계셨다. 어쩐 일로 다른 때 보다 일찍 왔느냐며 너무나도 평온하게 나를 맞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계셨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나는 오랫동안 그날이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이 글을 쓰려고 조회해보니 연도가 맞지 않는다. 중학교 때 청소를 하다가 급히 집으로 돌아 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크는 내내 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냉전시대를 살면서,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가족을 찾아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하며 드디어 찾은 가족을 끌어안고 울며불며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라서인지 냉전시대가 끝났다 하더라도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이상 전쟁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들이 군대에 가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쓰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당연히 가야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기를 북돋우고 걱정을 덜어주는 것 뿐이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영 군대 간다는 말이 없어서 아들에게 언제 군대를 가느냐고 물었다. 엄마가 편지를 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왜 안 가니?


엄마, 나 군대 면제받았잖아. 


맞다!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입고 수술까지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군면제를 받았다. 맞다. 그런데 그 일은 기억 속에서 까맣게 지워지고 군대 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겠노라고 언제 군대 가나 하고 벼르고 있었다니, 이 어이없는 건방증을 어찌할까. 

대한민국에 사는 나는, 내가 나이를 먹는 기준이 군인이었다. 어렸을 때는 국군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고, 오빠들이 군대에 가다가, 친구들이 군대에 가고.. 이제 친구 아들들이 군대에 간다. 대한민국 건장한 남자들이 모두 그 힘든 군대에 갔다 오는데 방위 출신 남편과 군면제받은 아들과 함께 살자니 갑자기 전쟁이라도 나면 나를 누가 지켜주나 걱정이 된다. 집안에 총 쏠 줄 아는 사람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군대 갈 걸 그랬다.

나의 한탄에 남편은 방위도 총 쏠 줄 안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한소리 한다. 믿어도 되는가? 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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