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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Sep 24. 2022

아들식 사랑표현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가끔 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드럽게 땍땍 거리네.....


조카들이 명절에 집에 왔을 때 남편은 아이들에게 연설했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아라. 20살에는 20살에 할 수 있는 행동, 25살에는 25살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할 수 있는 걸 놓치지 말아라.


나는 다르게도 생각한다. 중2라고 해서 꼭 엄마한테 덤비고 책가방을 제 방에 팽개칠 필요는 없다. 스무 살이라고 꼭 술을 퍼마시고 다닐 필요는 없다. 30살이 되기 전에 꼭 결혼을 해야 했던 우리들이 아니니까. 그 나이라고 해서 그 나이에 덧 입혀진 고정관념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사춘기의 광풍에 하루아침에 착한 아들들이 엄마를 쥐잡듯 잡아서 전국의 중학생 엄마들이 우울증을 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며칠 전 막내 시누랑 통화를 하는데 중1이 된 아들이 갑자기 여름방학이 될 때쯤부터 짜증을 내기 시작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천기누설을 해버렸다. 이제, 시작이에요.


아들은 애기 때부터 다정했다. 같이 눈썰매를 타면 겁쟁이라 울기 바뻤지만 울면서도 내 바지에 묻은 눈을 털어 주었다. 제 방에서 잠을 자다가 아침이면 내 이불속에서 얼굴을 내밀며 '엄마, 나 잘 잤어요.'라고 종알거렸다. 중학생 때는 2022년에 엄마를 두브로브니크에 여행시켜 주겠다는 각서까지 떡하니 써 줬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기도 했지만, 아빠의 무뚝뚝함을 따르지 않겠다는 천성적으로 부드러운 녀석이었다. 그러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며 지 아부지에 버금가는 무뚝뚝함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바스리스타로, 대학생으로 열심히 살던 녀석이 선배 집에서 기거하겠다며 집을 나가고 나서 뜸하게 연락이 오더니 명절에는 인심 쓰듯 5일을 집에서 지내고 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이 녀석, 어디서 엄마 아부지에게 무뚝뚝하게 대하라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디 잡혀가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사탕발림에 속아 쓸데없는 무언가에 시간을 투자하며 정신 빠진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의 기와집을 두세 채 세웠다 무너뜨렸다, 세웠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면 하얗게 아침이 밝았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부옇게 살이 올라 있는 것을 보니 그래도 굶고 다니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들은 냉장고며 찬장을 열고 닫고 하더니 쿠팡에서 먹을 것을 잔뜩 시켰다. 남편과 내가 둘이 살고 있는 지금은 냉장고에 애들이 먹을 만한 것은 없다. 도넛과 아이스크림과 얼린 망고가 도착을 하고, 커피 원두 가 왔다. 혼자 커피를 이렇게 내리고 저렇게 내리고 한다. 아라비카는 첫 모금에는 산미가 느껴지고 끝으로 가면 다크초콜릿처럼 다크 한 단맛이 올라온다나 어쩐다나 하는데 나에게 한 모금 준 커피는 - 음, 모르것다. 


며칠동안 집에 있는 아들에게 이야기도 나눌 겸, 커피를 부탁했더니 한 번은 거절당했고 한 번은 나를 옆에 세워두고 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르친다. 시간과 양을 체크하는 저울까지 등장한다. 이번에 산 아라비카 원두가 자기가 생각한 맛과 다른 맛이 난다며 그나마 엄마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찾았으니 이러하니 이렇게 하시오-하며 


명절이 끝나자 제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아들이 떠나고 문득 주방에 가니 이런 메모가 있다.


가끔 아들을 보면 드럽게 땍땍거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미운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불러 세워서 고쳐줬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다. 어른에게는, 친구끼리는, 누나에게는... 이러쿵저러쿵... 엄하게 키웠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부터는 되도록 터치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잘 키웠고, 기본기가 되어 있는 아이들은 엇나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왜 저럴까 싶지만-예를 들어 엄마랑 5분만 이야기하자 했는데 싫어,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겁 많은 아들은 저에게 직면한 문제에 대해 눈 감고 싶을 때도 있으리라. 그것을 굳이 짚어주지 않아도 알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 믿고 침대 위에 엎어져 있는 아들의 방문을 닫아준다. 이게 맞는 걸까. 의심도 들고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믿어본다. 아직 아들이 손을 내밀어 도와 달라고 하지 않으니 기다려본다. 



20대라고 꼭 방황할 필요는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겠지. 사춘기라고 꼭 신경질을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호르몬이 지배하는 상황이 있겠지. 퇴사를 했다고 꼭 뒹굴거릴 필요는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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