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세요
언젠가 내 동생이 뒹굴거리며 누웠는데 그 옆을 쓱 지나가는 우리 딸을 보고
"우와! 뒤꿈치가 동글동글 깨끗하고 예쁘다."
하고 말했다. 그 말에 싸늘해진 조카의 눈초리에 자신은 결단코 놀리자고 하는 말이 아니며 진심으로 뒤꿈치가 예쁘고 부러워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딸은 이모가 자신에게 얼마나 칭찬할 거리가 없으면 뒤꿈치를 들먹이냐고 화를 냈었다. 그때 딸은 틴에이져였다.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의 발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하다. 직장 내에서만 만보도 넘게 뛰어다닌다는 딸은 동글동글 핑크빛이 돌던 깨끗하고 예뻤던 뒤꿈치를 잃은 지 오래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
는 속담이 있다. 미운 사람에 대해서 공연히 트집을 잡아 억지로 허물을 지어낸다는 말이다. 내가 빵집을 할 때 뒤꿈치가 쩍쩍 갈라져서 피가 나곤 했었다. 야외도 아니고 실내도 아닌 가게에서 일을 하자니 안 그래도 건조한 피부를 가진 나는 늘 발이 고생이었다. 1916년 생인 시아버지는 나에게 밥풀을 으깨서 갈라진 틈을 채우고 끈으로 묶으면 운신하는데 조금 낫는다고 하셨는데 언 발에 오줌누기 였다. 말 그대로 임신방편일 뿐이었다.
발뒤축이 매끄럽다는 건 -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였을까? 며느리가 농사도 열심히 하고 집안 살림에 동동거렸다면 발뒤축이 달걀 같을 리가 없다. 말하자면 억지로 허물을 지어내는 것이 아닌 상당히 근거 있는 트집거리로 보인다. 분명 시어머니는 자신의 발과 비교를 했을 것이다. 풋크림도 없이 바셀린도 없이 쩍쩍 갈라져 피가 나는 안타까운 자신의 발을 보다가 발뒤축이 달걀 같은 며느리를 보면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살던 딸은 홀로 타지에서 세상과 대적하려니 발바닥에 힘을 꽉 주고 서야 했을 것이다. 기댈 곳이라고는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뛰어다녔을까. 새해가 되었다고 집에 온 딸의 발이 안쓰럽다. 하나의 생명을 낳아서 키웠으면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건데 고운 발을 간직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지 못해서 또 미안하다. 딸의 발 각질을 밀어주고 풋크림을 잔뜩 발라주며(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예전에, 이모가 너한테 발뒤꿈치 이쁘다고 했을 때 화냈던 거 기억나?
했더니 피식 웃는다. 이모가... 칭찬거리가 없어서 한 말이라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난단다.
새해가 밝은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삶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쉬엄쉬엄 살았다가는 밥벌이도 못할 것이어서 동동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내 새끼는 조금은 덜 동동대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건 엄마라서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