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 드셨어요?

달콤 어택

by 배추흰나비

나는 팥을 싫어한다. 팥이 들어간 음식은목구멍에서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어릴 때는 단팥빵, 시루떡, 깐도리(팥 깨끼) 등등 목구멍에서 탁 걸렸다가 혹시 조금이라도 넘어갔다 싶으면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며 꽥꽥거리다가 목구멍에 걸린 팥 껍데기를 들고 울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가리는 음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독한 편식쟁이였구나 싶다. 그런데 팥죽이라니!


작은 설이라고도 불리는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라고 한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단다. 음기가 가장 강한 날인 동지에 팥죽을 먹음으로 질병이나 귀신을 쫓는다. 팥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색을 지닌 음식으로 귀신을 쫓는데 최고의 곡식이다. 그런데 나는 팥죽이 싫은데 어쩌지?


언제부턴가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처럼 동지에는 팥죽을 한 사발 먹어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겼다. 팥떡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랑 살아서인지, 어른이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팥이 예전만큼 목구멍에 걸리지 않았지만 팥죽은 끓일 줄도 모르고 그 방법을 배우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작년 동지에 남편이 집에서 놀고 있길래 출근을 하며 숙제를 남겼다.


오늘이 동지이니 팥죽을 끓이시오.


남편이 팥죽을 끓이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빵집아저씨 출신이고, 단팥빵에 넣을 앙금도 직접 만들던 사람이라 믿고 맡겼다. 퇴근을 하니 맛 좋은 팥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도 남편에게 숙제를 줬다.


오늘이 동지이니 팥죽을 끓이시오

남편은 저울을 꺼내 들고 무게를 재고 시간을 재며 팥죽을 만들었다. 드디어 세 시간에 걸친 죽 끓이기를 끝내고 나에게 한 숟갈 들고 와서 맛을 보란다. 입에 넣자 혀가 오그라든다. 달콤이 주먹쥐고 혀를 치고 목구멍을 때린다. 으으윽----내가 너무 달다고 했더니 팥을 갈지 않고 통팥으로 먹어서 그렇다며 인정하지 않은 남편은 팥죽을 다 갈아버렸다. 다시 한 숟갈 떴으나 맛이 변할 리가 없다.

그래도 꾹 참고 죽 쓰느라 애쓴 남편과 앉아서 한 그릇씩 먹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구나... 하며 달달해진 속을 달래려 김치를 한보시기 먹고 앉았는데 남편이 밥을 먹자고 한다. 속이 너무 달아서 안 되겠단다. 안 달다더니...


내일 먹으려고 만들어 놓았던 김치찜이 급히 차려지고 계란말이도 했다.

동지에 달콤한 단팥죽으로 잡귀 공격에 성공한 우리는 김치와 계란말이를 먹고 평화를 얻었다. 소주는 입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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