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 온 손님들

어서 가세요~

by 배추흰나비

벌써 한참 되었지만 첫 아이가 돌이 되었을 무렵에 시작해서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작은 소도시에서 빵집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머리가 길어서 양갈래로 땋고 다녔다. 아이를 업고 다니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우리 빵집이 생기고 동네 사람들은 좋아했다. 가게이름도 도시스러웠고 커다란 통창에 써치라이트를 쏜 것 같은 간판이 시내를 훤하게 밝히는 것 같아서였단다. IMF시절이었지만 인근에 공장과 비닐하우스가 많아서 간식으로 우리 집 빵을 많이 사갔다. 좋은 재료를 써서 맛이 좋았고, 늘 보던 것이 아닌 새로운 맛의 빵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원래 빵쟁이 었던 남편에 비해 나는 장사라는 것이 너무 낯설고 힘들었다. 내 맡은 업무, 갓 나온 빵을 진열을 하고 뜨거웠던 빵이 식으면 포장을 하고, 손님들이 고른 빵을 포장해서 계산을 하는 것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성적인 나에게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기억에 남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 조용하신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언제부턴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으시고 빵이 담긴 쟁반을 계산대에 내려놓고는 옆으로 서서 빵을 봉투에 담아 줄 때까지 내 얼굴을 보지 않으셨다. 계산을 할 때도 얼굴을 돌리고 했다. 어느 날 정색하고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빵쟁이 남편과 나는 세 살 차이인데 동네에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난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는 거다. 열 살이 문제가 아니고 애엄마는 고등학생이고 남편은 서른이 넘었는데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둘이 도망쳐서 빵집을 차리고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 아주머니가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한 것은 너무 안쓰러워서였다. 딸이 둘이나 있다는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아이가 아기를 등에 업고 장사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단다.


저, 스물여섯입니다.


했더니 자기 딸과 동갑이라며 오랜만에 웃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놀다 가시는 택시아저씨가 심심해서 그냥 농담 삼아 이야기를 지어냈다는데

그 말이 믿어질 정도로 남편은 워낙 나이 들어 보였고 나는 동안이었다.




남편이 새벽에 나와서 빵을 만들고 먼저 퇴근을 하면 종종 늦은 시간에 혼자 가게를 보곤 했다. 어느 날 근사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케이크를 사러 왔다. 제일 크고 예쁜 케이크를 골라 포장해 달라고 하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은 결혼하지 3년이 된 유부남이지만 따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단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하게 되어 선물로 그때 새로 나오기 시작한 양문형 냉장고를 사줬으며 오늘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 케이크를 사가는 거라고 했다. 마지막 밤을 보내며 아름답게 보내주겠다나 뭐라나... 그때는 나도 결혼한 지 3년 차정도 되었을 때라 기가 막혔다. 슬픔을 듬뿍 담은 똥폼잡은 면상에 케이크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고이 보냈다.




어느 날은 키가 자그마한 중년의 아저씨가 빵을 사고 계산을 하면서 자신은 군청의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이라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혹시 군청 근처에 올 일이 있거나 심심하면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혼자 오지 말고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오라고 했다. 그러면 밥도 사주고 술도 사준단다. 아마 근처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알바생으로 보였나 보다.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내 손에 들린 명함을 황급히 뺏어 들고 가버렸다.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그 아저씨의 눈빛에는 내가 혹시라도 그 명함 속의 지위나 이름을 기억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보였다. 쪼잔한 놈. 그렇게 겁나면 뭐 하러 명함을 뿌리나. 대학생이었다면 쉽게 OK 할 거라고 생각을 한 건지 기가 막혔다. 그정도 지위쯤이면 좋아할 거라고 단정지은 뒤통수에 소금을 한주먹 뿌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빵집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손님이 거의 끊어진 시간에 가게 통유리 너머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참 아름답다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이쪽으로 지나갔다가 다시 저쪽으로 지나가고 하며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로 들어오더니 쭈뼛대며 나에게 다가와선 애인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카운터 옆에 작은 공간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였다. 남자도 내 눈길을 따라 아이를 따라 쳐다보았다.


결혼했습니다.


그 남자는 죄송하다고 하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이건 좀 귀엽다.


남편에게 늦은 시간에 혼자 가게를 보는 거 무섭다고 말했다. 온갖 남자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집적대도 된다고 생각하는 카운터 자리.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내 몸땡이가 빵집아줌마에 걸맞게 풍만해지고 빵집이 동네에 자리를 잡게 되자 그런 어처구니없는 손님은 줄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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