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뒤꿈치 만들기

아내가 필요해

by 배추흰나비

느닷없이 우울이 밀려올 때가 있다. 우울이 침범하기 시작하면 감당하기가 힘들다. 뿌연 안개처럼 스멀스멀 다가와 온 몸을 휘감고 내게서 떠날 생각이 없다.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절대 일어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면 어떻게든(이 어떻게든이 제일 어렵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바람은-늘 나를 도와준다. 비가 오기 전 습기 가득한 바람도 좋고, 꽃비가 내리는 봄날의 따사로운 바람도 좋지만 오늘처럼 칼바람이 불어 얼굴을 빨갛게 붓게 만들어도 좋다. 그런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도 넘게 걸어 다닌다. 그것이 새벽일 때도 있고 한밤중일 때도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걷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기분이 나아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식구들을 먹일 쿠키를 만든다거나 뼈다귀탕을 끓이는 것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 남편을 가꾸는 일을 한다. 다행히 남편이 오늘 집에 있어서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화장품 샾에서 발뒤꿈치를 보들보들하게 만들어주는 제품을 몇 가지 구입했다. 손발톱을 늘 내가 정리해 주는데 발이 자꾸 거칠어지고 각질이 난무해서 보기 싫던 참이었다.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잘 돕는 편이다. 싫다 하지 않고 발이며 얼굴이며 손을 내어준다. 나는 남편의 발을 붙들고 각질을 밀기 편하게 해 준다는 스프레이를 칙칙 뿌리고 풋파일로 밀었다. <각질 지우개>라는 이름에 맞게 지우개 가루 같은 각질이 술술 떨어진다.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사진은 노노. 싹 씻기고 풋크림까지 바른 발에 양말을 신기고 온도를 쫙-올린 이부자리에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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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뜨거운 수건을 대령하여 '조금 뜨겁습니다 손님~'하고 얼굴에 척 얹는다. 얼굴의 각질 제거 후 내 마스크팩을 붙인다. 그럴 때 눈을 가려주면 금세 코를 곤다. 그렇게 이십 분쯤이 지나서 마지막 손질을 해주며 '얼굴 한번 만져보세요 손님~'하고 말한다. 촉촉하니 좋을 것이다. 천 원짜리 마스크팩 하나 붙였을 뿐인데 몹시 행복해 보인다.

부스스 일어나며 남편이 나에게 말한다.


고맙지? 내가 있어서


남편은 알고 있다. 지저분하네 어쩌네 하며 투덜투덜하며 발의 각질을 밀고 얼굴을 두드려 대는 것.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것을.. 암요, 고맙습니다. 각질이 넘쳐나는 남편님. 우울이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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