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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Feb 05. 2023

대보름엔 쥐불놀이지

정월대보름

어릴 때, 대보름이 되면 아침부터 무수한 다짐을 해야 했다. 이날은 오전이 갈 때까지 누가 불러도 대답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하고 그 해 여름의 더위를 내가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오후쯤 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오늘 더위 몇 개를 받았네 팔았네 하며 서로 자랑을 하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밤이 늦으면 외출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 유일하게 밤늦도록 돌아다녀도 혼나지 않던 날이 대보름이었다. 대보름에는 집에서는 부럼을 먹고 남의 집에 부엌에 들러 밥을 훔쳐먹거나 동네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쥐불놀이를 하며  놀았다. 우리는 설이 지날 무렵부터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쥐불놀이를 할 깡통을 구하러 다녔다. 좋은 깡통은 이미 동네 오빠들이 모두 주워가서 어떨 때는 끝내 분유통처럼 크고 튼튼한 좋은 깡통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해의 쥐불놀이는 구경만 해야 했다. 복숭아통조림깡통이라도 어렵게 구하면 아빠가 중간중간 줄을 그은 모양으로 찢어주던가 또는 빵빵 못자국을 넣어 구멍으로 뚫어 놓고 철사로 길게 손잡이를 만들어주면 작은 나뭇조각을 모아 놓아야 한다. 기분 좋게 깡통을 안에 불을 놓으면 갑천 그 긴 뚝에 일렬로 서서 빙글 뱅글 돌리며 쥐불놀이를 했다. 나는 여자아이여서 그 뚝방에 같이 서보지는 못했지만 동네 오빠들은 크고 둥근 불덩어리를 만들었다. 입구가 뚫린 깡통 속 불꽃이 어떻게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깡통 바닥에 딱 붙어서 타오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빙글빙글 돌던 불은 논둑으로 휙 날아가 논둑을 태웠다.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자면 가슴이 팔딱팔딱 뛰었다. 지금은 산불염려로 직접 쥐불놀이를 할 수 없지만 대보름 지역행사로 쥐불놀이를 한 내용이 뉴스에 나오는 것만 봐도 예전처럼 가슴이 팔딱팔딱 뛴다.


보름날하면 오곡밥에 나물반찬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어느 해, 둘째 시누님이 가족 모두 오곡밥을 먹으러 오라고 한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은 "고모 가난해?" 하고 물었다. 말 그대로 오곡밥에 나물반찬만 있는 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다음에 고모네 갈 때 엄마가 불고기 싸 가."라는 귀여운 염려는 우리 집이 대보름날 불고기를 해 먹는 이유가 되었다.


오며 가며 부럼을 깨 먹으며 벌써 대보름이구나 싶은 것이 이제 정말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느껴보는 오늘이다.


*사진은 2019년 제23회 신탄진대보름쥐불놀이 축제/뉴스티엔티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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