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민 Nov 19. 2022

진도의 대파

진도에서 한 달 살기 -1-

"9월 중순이면 진도 전체가 한창 농사일로 바쁠 때인데... 진도는 전체 70% 정도가 농업이고 30% 정도가 어업에 종사해요. 그리고 또 여기가 관광지로는 개발이 덜 되어있지만 진도 쏠비치가 생기면서 여행객들이 좀 늘었어요. 우리 집에서 거기까진 20분 거리예요. 또 진도에는 조도라는 섬이 있는데 나도 한 달에 한 번쯤 조도에 달 보러 가기도 하고..."


민박집주인 어르신께서는 아직 전화를 끊으실 기미가 없으셨다. 나의 예약문의는 벌써 끝났지만 진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시고는 떠먹여 주시듯 알려주셨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진도에 관해 한 가지 의아함이 생겼다.


'섬인데 바다는 놔두고 왜 농업 비중이 훨씬 더 높지? 섬은 원래 어촌 아닌가?'




진도대교에서 진도 바다와 첫 만남을 하고는 가는 내내 바다를 볼 수 없었다. 목적지가 진도의 가장 남쪽이었는데 해안도로가 아닌 진도 가운데 길을 타고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섬이니까 어디서든 바다가 보이겠지 하면서 해안 풍경을 기대했는데 기대와 다른 뜻밖의 풍경을 보면서 내려왔다.

푸른 바다 대신 보인 것은 논처럼 펼쳐진 초록 대파밭 풍경이었다. 나도 시골에서 자라서 논밭은 많이 보았지만 대파가 이렇게 넓게 펼쳐진 풍경은 처음이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진도 대파를 검색해보았다. 진도 대파는 겨울에 수확되는데 국내 전체 대파 생산량의 약 20프로를 담당하며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을 맞고 자라서 줄기가 굵고 식이섬유 함량이 높다고 적혀있었다. 이걸 모르고 진도에 왔냐고 묻는 듯 대파밭은 나오고 나오고 또 나왔다.




진도 대파밭을 보면서 난 스페인의 대파 구이요리 '칼솟'이 떠올랐다. 4년 전 아내와 스페인 여행 중 먹었던 향토음식이었다. 파를 굽기만 했을 뿐인데도 너무 맛있어서 몇 접시 더 주문해서 먹었었다. 대파만으로도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된다는 것에 놀랐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칼솟'처럼 맛있는 대파 요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 진도 여행에서도 스페인의 '칼솟'처럼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대파 요리들이 있었다. 대파와 푸짐한 속재료에 묻혀 밀가루는 거의 보이지 않는 '파전'과 파채가 듬뿍 들어간 프랑스식 샌드위치 '진도 대파 잠봉 뵈르'였다. 이 요리들도 파가 부재료가 아닌 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요리들이었다. 파를 남김없이 먹은 나는 저 먼 나라 스페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칼솟'의 아쉬움을 여기 진도에서 잊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칼솟'
진도 운림뜨락 '파전'/진도 작은갤러리 '파전'/진도 나노로그 스토어 '진도대파 잠봉뵈르'

진도 한 달 살기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진도가 그립다. 여행이라는 그때의 시간, 원시적이고 날 것으로 보였던 진도의 풍경, 정감 있었고 특색 있었던 네 곳의 숙소, 정직한 논과 밭 풍경, 비췻빛 바다색, 외롭고 고집스러워 맛있는 진도의 카페들...

요즘 나는 마트에 가면 농산물 원산지를 자세히 살핀다. 혹시 진도에서 온 농산물인가 싶어서이다. 특히 진도 대파의 알싸함을 여기서라도 다시 만난다면 나의 진도 앓이도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02화 진도 한 달 살아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